‘반도체 부진’ 길어지면, 올 2% 중반 성장도 장담 어렵다

입력 2019-01-09 04:00

‘반도체 내리막길’ 징후는 지난해 초부터 나타났다. 경제 지표에서 반도체 부진의 조짐은 ‘투자→생산→수출’로 차츰 확대됐다. 결국 지난해 말에 반도체출하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추락하고, 수출은 27개월 만에 감소했다. 자동차와 조선업 위기 속에서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이 때문에 반도체마저 휘청이면 올해 2% 중반대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도체 호황’이 끝났다는 경고음은 지난해 상반기 강하게 울렸다. 통계청이 조사·발표하는 산업활동동향에서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3월부터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만의 일이었다. ‘설비투자 실종’의 배경에는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조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규모로 설비를 증설하던 반도체 기업들이 서서히 투자를 줄인 것이다. 다만 이때도 반도체 호황은 계속된다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의 경제지표가 최근 잇따라 발표되면서 ‘반도체마저 꺾였다’는 불안은 현실로 다가왔다. 한국은행이 8일 공개한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의 흑자폭을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폭의 감소는 반도체 수출 둔화에 뿌리를 둔다.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초 50%까지 치솟았지만 하반기 들어 0%대로 주저앉았다. 지난해 12월 반도체 수출액은 27개월 만에 전년 동월 대비로 줄었다.

반도체 생산지표도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반도체 생산은 1년 새 5.2% 감소했다. 공장에서 물건이 팔려나가는 지수인 출하지수는 전년 대비 16.3% 급락하며 2008년 12월(-18.0%)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을 찍었다. 생산 위축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반도체 수출의 ‘목줄’은 단가 인하, 글로벌 보호무역주의가 쥐고 있다. 반도체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DDR4 8기가바이트 기준)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9월 말 8.31달러에서 11월 말 7.19달러로 두 달 만에 1달러 이상 떨어졌다. D램은 한국의 대표 수출품목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도 글로벌 반도체 수요를 위축시키고 있다.

지금의 흐름이 길게 갈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반도체와 석유제품 등 주력 품목 단가 상승이 주춤하고, 미·중 무역분쟁이 현실화 되면서 세계 교역량이 둔화되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는 일시적인 요인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6~2.7%로 내다본다. ‘반도체 버팀목’이 사라지면 2% 중반대 성장을 장담하기 어렵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