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피해자 식별되면 피의자 구속, 단호해진 검찰

입력 2019-01-09 04:03
A씨는 모텔방 창문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옆 건물 모텔에서 성관계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을 3차례 몰래 촬영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그를 구속하지 않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경찰과 달리 A씨를 구속 기소했다. 촬영물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식별이 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카메라 등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몸이나 사생활을 몰래 찍고 유포하는 범죄(불법 촬영) 사건에서 피의자를 구속해 수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지검은 최근 상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3차례 휴대전화 카메라로 용변을 보는 여성을 몰래 촬영한 남성을 구속 기소했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지하철역에서 14차례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남성을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두 사람 모두 경찰에서는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았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강화된 기준을 적용해 구속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흐름은 검찰이 지난해 10월 마련한 ‘불법 촬영 범죄사건 처리 기준’에 따른 것이다. 대검찰청은 피해자 식별이 가능한 경우, 사적 영역을 침입해 촬영한 경우, 보복·협박을 목적으로 한 경우, 상습적인 경우 등에 해당될 때 원칙적으로 피의자를 구속해 수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찰 관계자는 8일 “디지털 성폭력은 피해자의 인격권을 말살하고 심각한 고통을 야기하는 중대범죄”라며 “엄정 대응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사건 처리 기준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강화된 기준이 적용되면서 불법 촬영으로 구속된 피의자는 2017년 4분기 37명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78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검찰은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 사건에도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관계 사진이나 영상물 등을 뜻한다. 검찰은 합의하에 성관계 영상을 찍었다고 해도 이를 보복이나 협박을 목적으로 유포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불법 촬영 범죄에 대해 검찰이 엄정 수사 방침을 적용하는 데는 해당 범죄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검찰에 따르면 불법 촬영 범죄는 2013년 2997건, 2014년 3436건, 2015년 5080건, 2016년 5704건, 2017년 6632건으로 4년 만에 배 넘게 증가했다.

검찰은 재판에서 불법 영상물 촬영·유포 범죄자에 대한 구형도 높이는 추세다. 검찰 관계자는 “형을 가중할 수 있는 요소가 여러 개인 경우 중첩적으로 적용해 법정 최고형까지 구형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안대용 기자 dan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