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본격화한다.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부 입김’을 확 뺀다.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설정하는 전문가그룹을 신설해 급격한 인상을 막는다. 상한선과 하한선을 정할 때 기업의 지급 능력, 경제성장률 등을 고려하도록 해 ‘적절한 인상 구간’을 제시하겠다는 구상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인력 구성도 바꾼다. 인상 구간을 정하는 전문가를 선정하는 권한을 노사에 위임한다. ‘정부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는 공익위원을 뽑는 과정에서도 전권을 내려놓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최저임금위의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정부가 제시한 개편 초안대로 진행되면 매년 노사가 극과 극의 최저임금을 제시하며 반목하는 일은 사라지게 된다. 최저임금위가 정부 방향성에 맞추는 행태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위한 초안을 공개했다. 결정체계를 바꾸기는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처음이다. 이 장관은 “현재의 결정체계는 노사 양쪽 의견차만 부각시킨다”며 “최저임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라는 ‘이층구조’로 바꿀 방침이다. 우선 최저임금 구간을 설정하는 전문가 그룹(구간설정위)을 새로 만든다. 9명의 구간설정위는 연중 상시로 통계를 분석하고 현장을 점검해 이듬해 최저임금 인상폭을 개략적으로 제시한다. 인상폭으로 100~500원이라는 구간을 내놓는 식이다. 전문가들이 마음대로 인상폭을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상폭을 보다 세밀하게 보고 결정할 수 있도록 ‘원칙’도 세운다. 결정 기준에 임금 수준, 사회보장급여 현황 등 근로자 생활과 밀접한 지표를 넣을 계획이다. 경제 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기업의 지급능력, 고용수준, 경제성장률과 같은 지표를 참고하는 것도 명문화할 예정이다.
구간설정위가 제시한 인상폭은 결정위에서 심의한다. 동수로 구성된 사용자·근로자·공익위원이 심의를 담당한다. 인원은 현재 9명씩 27명에서 줄어든다. 정부는 7명씩 21명을 두는 1안, 5명씩 15명으로 구성하는 2안을 마련했다.
‘이층구조’의 핵심은 인적 구성에서 정부 간섭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구간설정위에 참여하는 전문가를 뽑을 때 노사가 직접 추천하거나 노사 단체 의견을 듣기로 했다. 최종 결정권을 지닌 결정위에 들어가는 공익위원을 임명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정부는 2가지 안을 제시했다. 공익위원이 7명일 경우 정부가 4명, 국회가 3명을 선택하는 안이 첫 번째다. 노·사·정이 5명씩 15명을 추천한 이후 노·사에서 4명씩을 빼 최종 7명을 선정하는 방식도 제시했다. 무얼 택하든 정부 영향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신 사용자·근로자위원 구성에도 변화를 준다. 청년, 여성, 비정규직과 중소·중견기업 및 소상공인 대표를 반드시 포함토록 하는 안을 준비 중이다.
고용부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이 끝나면 한정된 지표를 놓고 최저임금을 정하던 기존보다 합리적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는 노사가 각자 방식으로 계산한 인상안을 제시하는 탓에 소모적 논쟁을 되풀이했다. 고용부는 속도를 내 이달 말까지 최종 개편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집중적으로 전문가 토론회, 국민 의견 수렴절차를 거칠 계획이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부터 새로운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생각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개편안이 확정되면 국회가 본격 입법에 착수해 7월 이전에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최저임금, 전문가그룹이 ‘구간’ 설정… 급격한 인상 막는다
입력 2019-01-08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