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시진핑(국가주석)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치바이스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웨이산(吳爲山·57) 중국국가미술관장은 ‘중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치바이스(齊白石·1864~1957)의 위상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 20세기 중국 최고 미술가인 치바이스의 병풍 작품은 지난해 연말 베이징의 경매에서 9억3150위안(1532억원)에 낙찰되며 중국 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그 치바이스 전시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관객을 부르고 있다. 2017년 가을 한·중 수교 25주년 기념으로 국내 첫 개인전을 가진 지 1년여 만에 열리는 전시다.
이번에는 ‘같고도 다른: 치바이스와 대화’란 제목으로 그가 영향을 받았고, 그가 영향을 준 중국 회화사의 대가들과 함께 나왔다.
특히 그가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던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서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1626~1705)의 진귀한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기회라 “또 치바이스야?”란 말이 쑥 들어갈 법하다. 청나라 말기 화가 우창시(吳昌碩·1844∼1927)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형사(形寫)’, 즉 형태를 닮게 그리는 화원화가의 기교를 버리고 ‘사의(寫意)’, 다시 말해 뜻을 그리는 문인화가의 계보를 이어가며 혁신을 이룬 작가들이다. 치바이스가 “구천에서 개가 되어 그들의 문하에서 수레바퀴를 돌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흠모했던 작가들이기도 하다.
전시 중인 작품 116점은 중국국가미술관이 소장한 걸작들이다. 모두 한국에서 최초 공개된 것들이다. 전시를 위해 방한했던 우웨이산 관장은 “팔대산인의 작품 7점이 한꺼번에 전시된 전례는 중국국가미술관에서도 없었다”고 했다.
팔대산인은 주탑의 호다. 명 태조 주원장의 후손인 그는 명 왕실이 망하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벙어리 흉내, 미치광이 흉내를 냈던 기행으로 유명하다. 원나라 문인화의 대가 황공망(黃公望)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자유분방한 필묵으로 이를 혁신했다. 대상을 그릴 때 테두리 없이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하는 몰골법(沒骨法)은 그에게서 나왔다. 가난한 농민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치바이스는 팔대산인의 탈속한 듯 솔직 대범한 붓질과 단순한 화면 구성이 자아내는 힘을 반복해서 학습했다. 팔대산인의 연 그림은 줄기는 철사처럼 가늘게, 잎은 큼지막하게 농담을 한껏 살림으로써 극도의 대비를 통해 청신한 기운이 넘친다. 200년이 지나 그를 마음의 스승으로 삼은 치바이스가 그린 연꽃은 비슷한 듯하지만, 물기를 줄인 마른 붓질에서 차이가 있다.
청나라 때 상하이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감각적인 화풍인 해상화파의 대가인 우창시는 비문의 글씨인 금석의 필획을 서화에 접목함으로써 이름을 날렸다. 대나무 난 모란 국화 등 같은 소재를 그린 우창시와 스무 살 후배세대인 치바이스의 작품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우창시에 비해 치바이스의 화풍이 보다 표현주의적이다.
역사 속 사제인 팔대산인과 치바이스,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우창시와 치바이스 등을 각각 비교하며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 우웨이산, 진상이(85), 우추어런(1908∼1997), 리후(1919∼1975), 장구이밍(1939∼2014) 등 5명의 현대미술작가들이 치바이스를 형상화한 조각과 회화도 만날 수 있다.
인물 조각의 대가 우웨이산의 치바이스 초상 조각은 서예의 일필휘지를 조각에 접목한 듯 긴 수염을 몸체처럼 세운 것이 ‘동양의 자코메티’를 연상시킨다. 2월 17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중국의 피카소’ 치바이스와 스승 팔대산인 걸작 한꺼번에 본다
입력 2019-01-07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