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방향을 왜곡하고 그것으로 거래를 하고 그런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기자회견에서 사법농단 의혹을 부인하며 이렇게 말했다. 강한 어조의 방어벽은 불과 반년 만에 상당 부분 허물어졌다. 구속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공소장에 그의 이름은 168차례 등장하며 공범으로 적시됐다. 예상 혐의 중 강제징용 소송 대목만 보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의 변호사를 세 차례나 직접 독대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것도 대법원장실에서였다. 진술로만 알려졌던 이 과정은 김앤장 사무실에 문서로 보관돼 있었고 검찰이 그것을 확보했다. 공무상 기밀누설의 물증까지 나온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상이 확정되면 국제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하며 판결에 개입했다는 진술도 확보됐다고 한다. “결단코 없었다”던 일이 이렇게 속속 드러나 검찰이 적용하려는 범죄사실은 임 전 차장 공소장에 언급된 것만 44가지나 된다. 그는 11일 검찰에 소환된다. 잘못이 ‘강제징용 재판 개입’ 단 한 건이라 해도 사죄만으론 갚을 수 없는 일이다. 포토라인에서 꺼낼 말을 신중하게 준비하기 바란다.
전직 대법원장이 수사선상에 오르고 피의자로 불려가는 것은 ‘결단코 없어야 하는’ 일인데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었고 과거 잘못을 들추는 적폐청산이 진행됐고 이를 둘러싼 진영 갈등이 존재한다는 식의 ‘배경’을 아무리 장황하게 늘어놓아도 사법부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사법부에 있으며, 당시 사법부를 지휘한 양 전 원장은 그 몸통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사법부는 반드시 바로서야 한다. 그 시작은 진실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고 끝은 재판마다 공정한 판결이 내려지는 것이다. 지난해 6월 이후 침묵해온 양 전 원장은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고 진실을 진술해야 한다. 검찰 조사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만 이뤄져야 하고 관련 재판에는 다른 고려가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해 벌하려는 것인데, 조직 이기주의든 정치적 논리든 다시 다른 요소가 개입된다면 사법부 복원은 요원해질 것이다.
[사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책임을 무겁게 인식하라
입력 2019-01-08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