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공언했던 이 약속은 20개월 만에 허공에 뜬 신세가 됐다. 청와대는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의 입을 빌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사실상 물거품됐음을 시인했다. 문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이 사업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권위와 불통의 상징이던 박근혜정부 청와대와 차별화하는 어젠다이자 득표 전략으로 효과를 냈다. 다른 공약보다 파기에 따른 비난이 더 거셀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야권은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이 결국 과거 정부와 별반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는 비판도 내놓는다. ‘광화문광장 대토론회 개최’ ‘대통령의 24시간 등 일정 공개’ ‘공직자 인사 시스템 투명화’ 등 청와대가 대국민 소통 강화 방안으로 제시했던 다른 공약들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 직무대행을 경험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5일 페이스북 글에서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이제야 경호와 의전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 이전에 몰랐다면 그 자체가 심각한 것이고, 알고도 공약을 했다면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이양수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6일 “지난 대선 당시 집무실 광화문 이전 공약에 대해 경호와 공간 문제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문 후보는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확언했다”며 “대통령이 국민과 한 약속을 어겼으니 사과도 직접 하라”는 논평을 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말만 번지르르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고 비꼬았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은 “대통령의 1호 공약이 실현불가라는 공약(空約) 판정을 받았다. 퇴근길 대통령과 소주 한 잔을 상상했던 국민은 공약(空約)에 속이 쓰리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퇴근길에 남대문시장에 들러 시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누는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한 일을 꼬집은 것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광화문 시대? 청와대에서 살아본 분이 어떻게 저런 공약을 하시나 했다”며 “뜬금없이 공약을 못 지킨다고 발표하는 것도 생뚱맞지만 왜 지키지 않느냐고 나서서 싸우자는 야당도 한심하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여당은 정치 쟁점화 차단에 주력했다. 조승현 더불어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역사성·보안·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를 존중한다”며 “운영의 묘를 발휘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4일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는 대체부지 확보와 경호·의전 등 현실적 제약으로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은 임기 중 추진이 어렵다고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집무실 광화문 이전은 실제로 옮기느냐의 문제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을 강조하겠다는 상징적 행보였다”며 “집권 3년차를 맞아 경제 문제 등에서 국민 고통에 대한 이해 없이 자기들만의 정치를 한다는 우려들과 결합되면서 종합적 성격의 비판·반발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양해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호일 이종선 이형민 기자 blue51@kmib.co.kr
朴정부와 차별화 효과본 ‘1호 공약’ 무산… “졸속” 비판 거세
입력 2019-01-0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