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국경장벽 예산 갈등이 촉발한 미 연방정부 셧다운(업무정지) 사태가 3주째로 접어들면서 각종 부작용이 취약계층에게 미치고 있다. 의회 파행으로 예산이 제대로 배정되지 않으면서 식량 공급과 주택 지원 등 저소득층을 위한 각종 복지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몰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양보 없는 ‘강 대 강’ 대결을 이어가면서 미국 역사상 최장기 셧다운 기록(21일)이 깨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NBC와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농무부 저소득층 식량·영양 지원사업인 ‘푸드 스탬프(food stamp)’ 프로그램은 현재 30억 달러의 비상 자금만 남았다. 셧다운 사태가 2월까지 이어질 경우 푸드 스탬프 대상자 3900만명 가운데 36%가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3월까지 이어질 경우 사업 자체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주택 복지사업도 위기에 몰렸다. 주택도시개발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저소득층과 노년층, 장애인을 위한 주택 안전점검 등 일부 사업을 연기했다. 주택도시개발부 관리들은 다음 달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세입자를 위한 임대 보조금 지급도 끊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 지도부는 셧다운 종식을 위해 협상에 나섰지만 진전은 없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커스텐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등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 행정동 아이젠하워빌딩에서 상·하원 지도부와 회동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이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경장벽이 국가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민주당 측을 설득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들은 6일 다시 회동을 갖기로 했지만 협상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지난 4일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케빈 매카시 하원 원내대표,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행정부와 여야 수장들이 백악관에서 담판을 시도했다. 펠로시는 지난 3일 개원한 116대 의회에서 하원의장으로 선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 사항인 국경장벽 건설을 위해 56억 달러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거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펠로시 의장 설득에 총력을 기울였다. CBS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이 가톨릭 신자임을 노려 “바티칸 시국에도 성벽이 있다.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다”며 “낸시, 바티칸을 좋아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은 “다른 주제를 논의하자”며 답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 일각에서 나온 탄핵론을 의식한 듯 “낸시, 왜 다들 날 탄핵하려 하느냐”고 물었지만 펠로시 의장은 “누구도 당신을 탄핵하길 원치 않는다”고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설득이 통하지 않자 “(셧다운 사태가) 몇 달에서 1년 동안 계속될 수 있다”며 엄포를 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외 여론전에도 불을 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종료 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안보를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회 동의 없이도 장벽 건설을 강행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며 민주당을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장벽이 오고 있다(The wall is coming)”는 문구와 함께 자신의 얼굴과 국경장벽 예상도를 나타낸 그래픽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셧다운 사태는 6일로 16일째를 맞으며 역대 세 번째를 기록했다. 만약 이번 주말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5년 말부터 96년 초까지 21일 동안 계속됐던 미 역사상 최장기 셧다운 기록이 깨지게 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보름 넘긴 셧다운에 미국 서민 넉다운, 푸드 스탬프·집세 지원 끊길 판
입력 2019-01-0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