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은 유튜브 생방송에서 “자살 생각은 없다”고 말한 지 하루 만인 3일 유서를 남기고 잠적했다. 최소 2개월간 준비해왔던 내부고발을 시작한 지 5일 만에 중단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그의 대학 선후배 일동은 입장문을 통해 “(신 전 사무관은) 자신의 행동이 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호소했다.
신 전 사무관은 전날까지도 내부고발에 대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지난 2일 0시쯤 진행한 유튜브 생방송에서 “(나는) 떳떳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을 같이한 고려대 동문 장세완(34)씨에게 “우울증 때문에 약을 받았다”면서도 “자살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힐스터디에서 연 긴급 기자회견에도 웃는 얼굴로 등장했다. “친구 옷을 빌려 입고 왔다”며 말문을 연 그는 “지금 모텔에 칩거하고 있지만 앞으로 당당하게 취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지인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전했다. 장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기자회견할 때까지 함께 있었지만 (자살의) 징후를 보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 전 사무관은 다음 날인 3일 오전 2시쯤부터 서울 관악구 모텔에 투숙했고, 오전 7시에는 친구인 이총희 회계사에게 “요즘 일로 힘들다. 행복하라”는 내용의 예약전송 문자를 남겼다.
때문에 신 전 사무관의 선택은 예상치 못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는 최소 2개월 전부터 이번 폭로를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30일 ‘고파스’에 지난해 10월 31일 쓴 글을 공개했다. ‘서문: 글쓰기에 앞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공무원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려 마음먹었다”고 적었다. 지난달 31일 기재부가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자 이튿날 바로 카카오톡 대화 캡처 자료를 공개하는 치밀한 면모도 보였다.
다만 기재부가 새해 첫날 고발 방침을 밝힌 뒤로 신 전 사무관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는 의견도 나온다. 유튜브 생방송에서 그는 “(감옥에) 살면 몇 년을 살겠느냐”면서도 “1월 1일 고발당할 일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고발당한다는 게 진짜 마음이…”라고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그와 야학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한 대학 선후배 일동도 “(신 전 사무관은) 지난 정부처럼 정보 유출자에게 중한 처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호소문에서 “이 친구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이 친구 역시 한 국민으로서 이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랐다”고 강조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그의 의견에 귀기울여줬으면 한다. 그가 잘못된 이야기를 한 것이라면 충분히 말하고 설명해주셨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신 전 사무관과 관련된 ‘지라시’에 대해서는 “뉴라이트였다느니 국가기밀로 사익추구 활동을 했다는 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신 전 사무관의 부모도 사과문을 내고 “심성이 여린 재민이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주위에 폐를 끼친 점을 많이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본인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 나선 일이 생각보다 너무 커져 버렸다”며 “스트레스가 심각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려 한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그의 생명에 지장이 없는 만큼 이 사건을 수사하지 않을 방침이다.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어제 행적까지 조사하면 사찰 아니냐”고 말했다. 발견 직후 서울보라매병원으로 이송된 신 전 사무관은 가족의 요청으로 병원을 옮겨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웃는 얼굴로 기자회견 했는데… 몇시간 후 유서 남기고 잠적
입력 2019-01-03 19:21 수정 2019-01-03 2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