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극 줄이며 국제 기준 통하는 경협, CEPA가 답이다

입력 2019-01-04 04:00

남북 경제협력의 전제 조건은 대북제재 해제이지만, 그 뒤로도 넘어야 할 산이 기다리고 있다. 최우선으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교역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기존 경협처럼 남북이라는 ‘특수관계’에만 의존해서는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경협 뼈대’를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장 보편적 수단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꼽힌다. 다만 남과 북의 경제규모, 동일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FTA와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목받는 게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이다. FTA는 무역에 초점을 맞추지만, CEPA는 인프라 구축이나 서비스시장 개방 등 경제협력에 무게중심을 둔다. 중국이 홍콩과 맺은 CEPA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영국령이었던 홍콩이 반환된 이후 경제·사회적 간극을 줄이기 위해 CEPA를 선택했다.

남과 북의 경제 상황을 보면 CEPA 필요성이 부각된다. 3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017년 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은 36조6310억원으로 집계됐다. 남한(1730조4610억원)과 비교해 47.2배나 차이를 보였다. 경제성장률도 극과 극이다. 남한은 2017년 3.1%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반면 북한은 -3.5%로 뒷걸음질을 쳤다. 이런 상태에서 FTA를 맺으면 남북에 함께 이득을 가져다주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북한을 겨냥한 ‘대북제재 그물망’이 여전하다는 측면에서도 FTA보다 CEPA 추진이 유리하다. 국제사회에서 ‘제재 예외’를 인정받을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혜정 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북한경제 리뷰 12월호’ 기고에서 “국제통상법적으로 봤을 때 남북 CEPA 체결은 예외 조치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CEPA 체결은 남북 경협을 ‘내부거래’가 아닌 ‘국가 간 거래’로 격상시키는 효과도 가져다준다. 과거 경협의 경우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면 최혜국 대우, 보조금 협정 같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으로 판정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국가 간 거래라면 이런 문제가 단번에 해결된다.

대신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CEPA를 설계해야만 한다.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다. 향후 북한을 WTO 가입 등으로 이끌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전문가들은 남북 투자협력 합의서처럼 기존에 남북이 맺은 15건의 경협 관련 합의서를 보완·발전시키는 게 이상적이라고 분석한다. 이를 통해 비관세 장벽을 없애고 한국 기업의 대북 투자를 보호하는 등 ‘안전 장치’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정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경협이 경제적 이익과 시장거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개념을 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