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주재 북한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가 최근 현지에서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사급 외교관의 망명은 지난해 비핵화 선언 이후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을 모색하고 있는 북한 지도부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민기 의원은 3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보고를 받고 “조 대사대리가 임기만료를 앞둔 지난해 11월 부인과 함께 공관을 이탈해 잠적했다”고 밝혔다. 자녀와 함께 망명을 신청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정보위 자유한국당 간사 이은재 의원은 “조 대사대리는 1975년생으로 44세이며, 2015년 3등 서기관으로 이탈리아에 부임했다가 2017년 1등 서기관으로 승진한 뒤 대사대리가 됐다”고 전했다. 정보위 관계자는 “조 대사대리는 현재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정부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고, 아직 망명 희망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사대리의 망명 신청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3년 임기를 마치고 복귀가 임박하자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조 대사대리의 망명이 실현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권 이후 대사급 외교관의 첫 망명 사례가 된다.
국정원은 조 대사대리가 고위층이 아니라고 했지만,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이날 채널A 방송에 출연해 “조성길은 최고위층까지는 아니지만, 북한에서 나와는 대비도 안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아주 좋고 가문도 좋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조 대사대리와 외무성 같은 국에서 일했다면서 일찍 사망한 그의 아버지도 외무성 대사였고, 장인은 리도섭 전 주태국 북한대사라고 밝혔다. 또 조 대사대리가 평양 의학대학을 졸업한 부인과 함께 고려호텔 앞에 있는 북한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전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지도층의 사치품을 밀수하는 통로 중 하나로 이탈리아를 지목하며 “2006~2009년 이탈리아에서 연수를 한 조성길이 밀수 루트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당히 많은 (밀수 관련) 자료가 조성길을 통해서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사대리의 한국행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조 대사대리는 우리 대사관을 접촉하지도, 한국행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김민기 의원도 “조 대사대리가 잠적한 두 달 사이 국정원과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한국행을 선택하지 않으리란 걸)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세를 잘 파악하는 외교관이라면 남북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나 캐나다행을 택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북한 외교관의 망명 사례는 91년 고영환 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과 96년 현성일 주잠비아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을 비롯해 여러 차례 있었다. 97년에는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대사가 형과 함께 미국으로, 2016년엔 태 전 공사가 한국으로 망명했다.
조 대사대리의 망명 신청은 북한 내부에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북 소식통은 “대사대리라고 해도 대사급의 망명이기 때문에 대사관 2인자였던 태 공사 망명 때보다 파장이 더 클 것”이라며 “북한 고위층에 상당한 불안이 쌓이고 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주러 북한대사관의 고위 외교관이 귀국 여비가 없어 한동안 귀국하지 못했다고 들었다”며 “그만큼 현재 북한 해외 공관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신 센터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에서 외교관에 대한 대대적 단속과 숙청을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조 대사대리가 망명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3일 보도했다. 안사(ANSA) 통신은 “북한 관리로부터 망명 요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교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는 “몇 주 전 조 대사대리의 교체 통보만 있었다”며 “그는 망명 신청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최승욱 김성훈 조민아 기자 applesu@kmib.co.kr
伊 주재 北 대사대리 망명 신청… 北 내부 상당한 동요 예상
입력 2019-01-04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