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로 몸을 다치면 상대방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사고가 아니었으면 장래에 벌 수 있는 돈을 한꺼번에 달라고 요구한다. 이를 법률용어로 일실수입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피해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일실수입을 도시일용노동자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미성년자나 대학생의 경우 ‘장래의 가능성’을 고려해 일실수입을 계산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처음으로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부(부장판사 김은성)는 3일 전문대생 한모(20)씨가 피해자인 소송에서 전문대 졸업자의 평균 소득 등을 고려해 일실수입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한씨는 초등학생이던 2010년 5월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던 택시에 치여 얼굴과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2016년 11월 택시조합 측을 상대로 9000만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재판이 끝날 무렵 그는 전문대 학생이 됐다.
1심 재판부는 택시조합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기존의 판례대로 도시일용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일실수입을 산정해 총 2800여만원을 한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일괄적으로 도시일용노동자 임금을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청소년인 피해자는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수억원의 연봉을 받는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법원이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하며 일실수입 산정에 지나치게 엄격했다고 지적했다. 누구든 도시일용노동자 임금을 벌어들일 가능성은 100%에 가깝지만 그 이상의 임금은 법원이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무조건 배척해 왔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아울러 “피해자는 별 잘못 없이 피해만 당했는데도 ‘당신은 무직자와 마찬가지로 평생 도시일용노동자의 수입만을 올렸을 것’이라는 평가로 재단되는 것”이라며 “장래의 가능성을 모두 포섭할 수 있는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피해자의 교육 수준 등을 고려한 ‘평균소득’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통계청 통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보고서 등에 나타난 학력별·경력별 소득 통계를 기준으로 한씨의 일실수입을 산정했다. 전문대 졸업자의 평균 소득, 전체 경력자의 평균 소득, 전체 근로자의 평균 소득을 반영해 한씨에게 440여만원을 더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 판결에 택시조합 측과 한씨 모두 상고하지 않아 대법원 판단은 받을 수 없게 됐다. 해당 판례는 향후 관련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이 판례가 대법원에서 확립되면 손해배상의 범위가 획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법원 “미성년 사고 손배소, 일용노임 아닌 ‘장래 가능성’ 고려해야”
입력 2019-01-04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