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술 노린 M&A 방지 나섰지만 핵심 인력 이직엔 무방비

입력 2019-01-03 19:12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지난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핵심기술 보유기업 해외 인수·합병 사전 승인제 도입, 산업기술 유출시 손해액 3배 이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이 포함된 산업기술 유출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국가핵심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걸 막는 ‘방어벽’이 세워진다. 외국 기업의 한국 기업 인수·합병(M&A)에 제동을 건다. 국가 연구·개발(R&D) 지원을 받아 국가핵심기술을 개발한 한국 기업을 외국인이 인수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동안 신고만 해도 되던 것을 바꿨다. 신고 의무가 없었던 자체 개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도 외국인이 인수하려면 미리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계는 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개미구멍’을 우려한다. 국가핵심기술을 지닌 인력들이 외국 기업으로 이직해도 ‘개인의 선택’이라 제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3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산업기술 유출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핵심 산업기술이다. 현재 12개 분야에 64개 기술이 지정돼 있다.

산업부는 외국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을 인수할 때 정부 승인을 받도록 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라 해도 외국 기업이 인수할 때 사전에 신고토록 했다. 지금까지는 외국 기업이 국가 R&D 지원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한국 기업을 인수할 때에만 사전 신고하면 됐다.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자체 개발했다면 외국 기업의 인수 여부를 신고할 의무가 없었다. 외국 기업의 기술 확보·탈취를 목적으로 한국 기업을 통째로 M&A해도 차단 장치가 없는 것이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최근 미국 일본 등이 기술 보호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반도체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매년 20건 이상의 기술 해외 유출이나 유출시도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이에 관련법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국가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에 따른 처벌도 세졌다. 최소 형량을 3년 이상으로 높였다. 현재는 일반 산업기술 유출과 동일하게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 벌금을 매긴다.

여기에다 정부는 기술 유출로 기업에 끼친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가핵심기술을 인공지능(AI), 신소재 등 신규 업종으로 확대해 기술 보호대상도 늘린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선 ‘인력 유출’ 부분이 빠졌다. 산업계는 기업 차원의 기술 유출뿐만 아니라 핵심기술을 보유한 인력의 이동도 심각하다고 본다. 정부도 난감하다. 핵심기술 연구에 참여한 개인도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기본권이 있어 강제로 이직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부는 대대적 인센티브 제공도 검토했지만, 외국 기업이 파격적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잦아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정 차관은 “인력 유출 방지대책은 현재 별도 사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전직 금지 약정 등 민간기업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술 유출 방지수단이 실효성을 발휘하도록 제도적인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