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를 본 관객 1232만명 중 이병헌의 상투에 꽂혀 있던 용조각 비녀를 기억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혹은 그가 썼던 망건이 이전 사극에서 시도된 적 없는 푸른색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든지. 아마도 극히 드물 것이다.
대중에게 익숙지 않은 영화분장의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가 마련됐다. 18년 경력의 조태희(40·사진) 분장감독이 8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선보인 ‘영화의 얼굴창조전’이다. ‘광해’ ‘역린’(2014) ‘사도’(2015) ‘남한산성’(2017) ‘안시성’ ‘창궐’(이상 2018) 등 그가 분장을 담당한 영화 15편의 분장 소품 500여점이 전시됐다.
분장 콘텐츠를 다룬 전시는 국내 최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아라아트센터에서 2일 만난 조 감독은 “분장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재가공될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4개 층에 걸친 전시관을 둘러보다 보면 그의 세심함을 짐작할 수 있다. 소품별로 영화의 스틸 사진과 함께 배치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사극에 쓰인 가발이나 비녀, 수염 등이 주를 이루는데, 비슷한 듯 보이지만 각각의 디테일이 완전히 다르다. 필요에 따라 고증을 따르지 않고 창의적으로 디자인하는 경우도 있다.
조 감독은 “모든 영화의 소품들이 천편일률적이면 얼마나 재미없겠나. 고증에 얽매이기보다 창작의 여지를 두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관객은 배우의 연기를 볼 뿐 그의 분장이나 소품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게 바람직한 것이다. 분장은 도드라지지 않고 작품에 녹아 있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분장 전문회사 ‘하늘분장’의 대표이기도 한 조 감독은 ‘엽기적인 그녀’(2001)를 시작으로 수십여 편의 작품에 참여했다. 이병헌 송강호 현빈 조인성 등 충무로 대표 배우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수명이 짧은 직업인데, 나이 들어서도 현장 나가는 게 부담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오는 4월 23일까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이병헌이 ‘광해’로… 분장의 모든 것 ‘영화의 얼굴창조전’
입력 2019-01-04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