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란 무엇인가. 궁색한 답변만 떠오른다면 팟캐스트 ‘빨간책방’에 등장한 대화를 엮은 책 ‘질문하는 책들’을 읽어보시길. 빨간책방 진행자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첫머리에 이렇게 적었다. “책은 문을 닮았다. 직육면체 모양에 언뜻 좌우대칭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쪽으로만 열린다. 그러고 보니 책의 내부는 방 같기도 하다. 열고 들어가면 사각의 틀 속에 하나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책은 세상을 향한 문이면서 하나의 세계를 품은 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빨간책방은 이토록 심오한 의미를 띤 책의 가치를 실감케 하는 방송이다. 애청자들 사이에서 ‘빨책’으로 통하는 빨간책방은 최근 방송 300회를 맞았다. 명실상부한 도서 분야 최고의 팟캐스트라고 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업로드되는 이 방송은 팟캐스트 순위 최상위권에 자주 랭크된다. 대형서점엔 빨간책방에 소개된 책들을 따로 진열한 매대가 설치돼 있기도 하다. 빨간책방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빨간책방은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기획·제작하는 콘텐츠다. 첫 회가 업로드된 날짜는 2012년 5월 1일. 당시만 하더라도 출판사가 팟캐스트를 제작한 경우는 위즈덤하우스가 처음이었다.
빨간책방을 대표하는 코너는 특정 도서를 2회에 걸쳐 다루는 ‘책, 임자를 만나다’라고 할 수 있다. 김중혁 소설가와 이다혜 작가가 2주 간격으로 번갈아 출연해 이동진과 호흡을 맞추는데, 소설의 비중이 높긴 하지만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다루는 게 특징이다.
위즈덤하우스에서 만드는 방송이지만 이 출판사 책을 중점적으로 다룬 경우는 별로 없었다. ‘책, 임자를 만나다’에 소개된 위즈덤하우스 책은 만화 ‘미생’, 역사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등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책, 임자를 만나다’에 소개할 책은 이동진이 직접 고르는데, 방송을 들으면 이동진 특유의 박람강기한 재능을 확인하게 된다. 살뜰하게 책의 내용을 갈무리해 소개한 뒤 날카로운 비평을 곁들이는데 언제나 조심스러운 태도로 텍스트에 접근한다는 게 특징이다.
방송의 인기는 도서 판매량으로 이어지곤 한다. 방송에서 비중 있게 소개된 책은 자주 판매량이 치솟았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2003년 국내에 출간된 이 소설은 10년 넘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다가 2014년 빨간책방에 소개되면서 베스트셀러로 거듭났다.
빨간책방은 2주 간격으로 공개방송을 진행해 이 내용을 업로드하는데, 애청자들의 티켓팅 경쟁도 치열하다. 김은주 위즈덤하우스 이사는 “방청객을 선착순으로 60명 정도 모집하는데 방청 신청을 시작하면 매번 1~2분 안에 매진된다”고 전했다. 이어 “빨간책방은 이동진 평론가를 향한 신뢰가 있었기에 기획이 가능했던 콘텐츠”라며 “위즈덤하우스 책을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빨간책방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루트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빨간책방은 2019년을 맞아 새로운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출판사는 아직 구체화된 건 없지만 콘텐츠 시장의 중심으로 부상한 유튜브에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김 이사는 “팟캐스트의 정체성은 그대로 가져가면서 독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추가로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있다”며 “올해는 ‘빨간책방 2.0’ 버전이 시작되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300회 맞은 ‘빨간책방’ 새로운 변신을 꿈꾼다
입력 2019-01-03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