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사람 차별 없길”… 가해자 보듬은 유족

입력 2019-01-03 04:00
고(故) 임세원 교수의 여동생인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교수가 2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서 기자들에게 유족의 뜻을 전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제공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유족은 2일 평생 마음의 병 치유에 애써온 고인의 뜻을 기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전한 진료환경’ ‘마음 아픈 사람들이 언제든 편견과 차별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유족의 당부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컸지만 가해자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스스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이를 책으로 펴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등 자살 예방에 힘써 왔던 고인의 유지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 이날 마련된 임 교수 빈소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고인의 동생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울음을 참으며 “의료진의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유족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 교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묻지 않았고 듣지도 않았다. 우리는 고인께서 평생 환자들을 위해 사셨던 것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답했다.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은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허망해했다. 10년 넘게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아온 주은화(45)씨는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힘들었는데 (임 교수가) 항상 위로해줬고 큰 힘이 됐다”며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 이제 누굴 의지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에게 네 차례 진료를 받았다는 한 조문객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진심이었다. 위로를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마음을 회복해서 일상생활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동료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임 교수는) 본인의 우울증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본인이 겪어봤기 때문에 환자들 마음을 더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SNS에는 환자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이것이 나의 일이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환자)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고 했다.

임 교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관한 학술논문 10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하며 학회 활동을 해 왔다. 2016년에는 자신이 우울증을 극복한 이야기를 담은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펴내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다.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도 그가 개발했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소중히 여겼던 고인은 마지막까지 이타적이었다. 사건 당시 CCTV를 확인한 경찰은 “진료실을 빠져나온 임 교수는 복도 앞에 있던 간호사에게 ‘도망가라’고 외친 뒤 반대편으로 뛰어갔다”며 “도망가면서도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하는 듯 그쪽을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밤 피의자 박모(30)씨를 구속했다. 그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이동하기 전 종로경찰서에서 ‘왜 범행했느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차량에 올랐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