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유족은 2일 평생 마음의 병 치유에 애써온 고인의 뜻을 기려 달라고 부탁했다. ‘안전한 진료환경’ ‘마음 아픈 사람들이 언제든 편견과 차별 없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유족의 당부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컸지만 가해자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스스로 우울증을 극복하고 이를 책으로 펴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등 자살 예방에 힘써 왔던 고인의 유지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 이날 마련된 임 교수 빈소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고인의 동생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울음을 참으며 “의료진의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정신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 유족의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 교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가해자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묻지 않았고 듣지도 않았다. 우리는 고인께서 평생 환자들을 위해 사셨던 것만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답했다.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은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허망해했다. 10년 넘게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아온 주은화(45)씨는 “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힘들었는데 (임 교수가) 항상 위로해줬고 큰 힘이 됐다”며 “정말 좋은 분이었는데. 이제 누굴 의지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임 교수에게 네 차례 진료를 받았다는 한 조문객은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진심이었다. 위로를 많이 받았고 그로 인해 마음을 회복해서 일상생활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동료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임 교수는) 본인의 우울증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본인이 겪어봤기 때문에 환자들 마음을 더 잘 이해했다”고 말했다. 임 교수의 SNS에는 환자에 대한 애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이것이 나의 일이다’고 스스로 되뇌면서 그분(환자)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한다. 그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 또한 그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고 했다.
임 교수는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관한 학술논문 100여편을 국내외 학술지에 게재하며 학회 활동을 해 왔다. 2016년에는 자신이 우울증을 극복한 이야기를 담은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를 펴내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다. 한국형 표준 자살예방 교육 프로그램인 ‘보고듣고말하기’도 그가 개발했다.
타인의 삶을 존중하며 소중히 여겼던 고인은 마지막까지 이타적이었다. 사건 당시 CCTV를 확인한 경찰은 “진료실을 빠져나온 임 교수는 복도 앞에 있던 간호사에게 ‘도망가라’고 외친 뒤 반대편으로 뛰어갔다”며 “도망가면서도 간호사가 잘 피했는지 확인하는 듯 그쪽을 바라봤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밤 피의자 박모(30)씨를 구속했다. 그는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이동하기 전 종로경찰서에서 ‘왜 범행했느냐’ ‘유가족에게 할 말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차량에 올랐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마음 아픈 사람 차별 없길”… 가해자 보듬은 유족
입력 2019-01-03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