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두글자 발견 : 희망] 희망, 그 안에 있습니다

입력 2019-01-04 18:58
픽사베이
2018년 5월 1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 정기연주회’ 모습. 정상일 교수 제공
정상일 교수
새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가 ‘희망’이다. 많은 사람이 희망에 대해 말하지만 막연히 꿈을 꾼다고 해서 희망이 생기고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작가이자 목사 프레드릭 비크너가 말했듯 “희망은 때로 진실이 실현되는 날개가 되며, 진실은 때로 희망이 놓이는 반석”이 된다. 우린 이 희망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 희망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무엇인가.

성서에서 희망은 ‘약속’의 개념으로 표현된다.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창 12:2~3)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다. 이 믿음 위에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을 품게 된다. 그래서 희망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희망은 현재에 뿌리박고 있다. 희망한다는 것은 깊은 현실 안에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절망 끝에 숨겨진 ‘희망’

정상일(61·세한대 실용음악과) 교수는 ‘휠체어를 탄 기적의 지휘자’로 불린다. 세계 20여 개 나라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그에게 갑자기 찾아온 시련은 인생의 방향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과로로 입원 중이던 2012년 5월 21일 새벽. 약 기운으로 몽롱한 상태에서 병원 복도를 걷다가 11층 아래로 추락하는 큰 사고를 당했다. 살아난 것이 기적이었다. 전신의 골절과 척추 5, 6번 손상. 지체 장애 1급의 장애를 갖게 됐다. 사고 후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 절대 절망과 고독에 빠져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긴 한 건가”라고 절규했다.

그러던 그가 절망에 발목이 잡히지 않고 희망의 삶을 꾸리게 된 것은 바로 믿음의 힘이었다. 그는 퇴원 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로고스교회 기도실에서 기도하며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 ‘제2의 삶’을 주셨으니 음악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끊임없이 꿈꾸며 재활 훈련에 매진했다.

1년간의 재활 훈련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다. 그뿐 아니라 2016년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을 창단했다. 지휘자와 100여 명의 단원이 모두 휠체어를 타는 세계에서 유일한 합창단이다. 이동이 쉽지 않은 단원들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비엔나, 이태리 로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주회를 했고, 2017년 10월 1일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제1회 세계성가합창제’에 참가했다. ‘2018 평창동계장애인올림픽대회’ 개막식에서 휠체어합창단이 애국가를 불렀다. 창단 때부터 꿈꿨던 일들이었다.

어떤 누구도 처음엔 그가 다시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무대에서 지휘를 다시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무대 위에 서는 자신의 모습을 마음속에 계속 그렸기 때문에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린 종종 희망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처한다. 주위엔 생존율 0%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 암 환자 환우회 회원의 말이다.

“우린 이미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서너 달밖에 못 산다’는 최후통첩을 받았던 말기 암 환자들입니다. 최후통첩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생각하고 있는 셈이지요. 저는 최후통첩을 받고 모르핀 주사까지 맞았던 사람입니다. 벌써 햇수로 5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폐암으로 투병했던 저는 숨 쉬고 있는 매 순간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보통 말기 암 환자는 초기 암이 수천 배 이상 분열 증식된 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생존 확률이 0%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우리 회원 중 76%가 0%의 한계를 넘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희망이 있는 한 미래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희망을 버린다는 것은 어쩌면 정신적인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희망을 포기하고 버리려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희망은 ‘용기의 샘’

철학자들은 희망은 ‘선’이면서 동시에 ‘악’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불행을 이겨낼 힘과 좌절하지 않을 ‘용기의 샘’이라는 측면에서 선이지만 미래에 대한 확고한 예측과 대비 없이, 기대와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한다면 악이란 것이다.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희망의 원리’에서 희망은 환멸을 동반한다고 말한다. “희망은 언제나 환멸을 동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희망의 가장 친숙한 형태가 낮에 꾸는 낮 꿈이다. 그러나 이 낮 꿈은 그저 낮 꿈일 뿐이다. 낮 꿈을 꾸는 자가 일어서서 그 꿈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창조해 낼 때 그 행위 속에서 희망은 존재한다.”(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의 원리’ 중에서)

블로흐가 말하는 희망의 다른 말은 ‘낮 꿈’이다. 밤에 꾸는 꿈이 아니라 철저한 의식의 세계에서 더욱 나은 삶을 갈망하는 것이다. 낮 꿈은 일단 가슴에 품은 다음에는 현실에 구체화하기 위해 애쓰고 준비하는 실천 과정이 포함된다. 밤 꿈은 혼자 꿀 수밖에 없지만, 낮 꿈은 여럿이 함께 꿀 수 있다. 밤 꿈은 누워서 머리로 꾸지만, 낮 꿈은 서서 발로 꾸어야 이루어진다. 깨어서 매 순간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한 걸음씩 옮기는 것이 희망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믿음과 희망 사이엔 신비한 역학관계가 있다. 구약성서 욥기에서 욥이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믿음이란 연료가 계속 태워져야 우린 희망할 수 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롬 5:3~5,현대인의 성경)

희망은 미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사람이 지닌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희망이 있는 한 미래의 끈을 놓치지 않는 셈이다. 또 과거에도 함께하셨던 그분의 존재를 현재도 믿는다면 우린 희망을 선택할 수 있다.

정상일 교수의 희망에 하나 더
낮은 자세로 섬기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고 기도하니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었어요.”

최근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이룸센터 2층 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 사무실에서 만난 정상일(사진) 교수는 희망이 있어야 용기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냐’는 질문에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예전엔 섬김을 받고 군림했다면 이젠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죠. 예전엔 보수를 받고 공연을 하고 단원과 학생에게 지시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단원과 학생을 낮은 자세로 섬기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휠체어합창단이 무대 위에 서면 관객들은 단원들의 밝은 표정과 노래 실력에 놀란다. “사람들이 장애인 합창단이라고 하면 분위가 어두울 거로 생각하는데 우리는 정말 즐겁게 연습해요. 서로를 섬기는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그는 40년 넘게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했지만 사고 이전엔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지금은 ‘에브리데이 크리스천’으로 산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에게 새해 희망을 물었다. “휠체어합창단이 휴전선을 넘어 평양에서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글·사진=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