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관광지 추악한 지하경제를 추적하다

입력 2019-01-05 04:01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풍경. 전직 애널리스트 코너 우드먼은 신간 ‘나는 세계 일주로 돈을 보았다’에서 위폐가 넘쳐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전 세계 주요 도시 8곳의 지하경제를 추적한다. 픽사베이
영화라면 로드무비에 오싹한 스릴러라고 하겠다. 한 권의 책으로 나왔으니 흥미진진한 여행기이자 위험천만한 추적기라고 해두자. 영국 런던의 금융가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애널리스트 코너 우드먼은 어느 날 컴퓨터 모니터 앞 숫자놀음에 회의를 느끼고 회사를 그만뒀다. 우드먼은 집을 처분해 여행경비를 마련하고 세계 일주를 떠났다. 그는 이때 경험을 담은 저서 ‘나는 세계 일주로 경제를 배웠다’(2011)와 ‘나는 세계 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2012)를 냈다. 경제이론으로 무장한 전직 애널리스트의 세계 일주기에 20만명의 독자가 열광했다. 우드먼이 전 세계 주요 도시 8곳의 지하경제를 추적한 신작 ‘나는 세계 일주로 돈을 보았다(원제 Sharks)’를 들고 돌아왔다.

“이 책은 결코 여행기에서 볼 법한 화려한 관광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면에 감춰진 어둡고 추악한 돈과 인간의 이면을 다룬다. …나는 당신이 희생양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내 여행을 통해 그들이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지, 그들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 우드먼이 프롤로그에서 밝힌 집필 의도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4년 넘게 아르헨티나 미국 인도 콜롬비아 영국 멕시코 이스라엘 스페인을 여행했다. 범죄를 통해 형성되는 지하경제의 규모는 어마하다. 세계 노동 인구의 절반인 약 18억명이 암시장에서 일하고, 전 세계 ‘범죄 기업’의 수익은 세계 50대 기업의 수익을 합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이탈리아 러시아 일본 중국의 범죄 기업 수익은 1조달러(1130조) 규모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면 거스름돈으로 위조지폐를 받을 수 있다. 거리 어디에나 위조지폐 ‘팔소’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드먼은 이곳에서 택시 기사에게 돌려받은 돈을 카페 점원에게 내밀었다가 무안을 당한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건 팔소예요. 이걸로는 계산이 안됩니다.” 그는 어찌어찌해 위조지폐를 제조하는 일당의 소굴로 들어간다.

우두머리는 뻔뻔하게 “난 거리에서 먹고 자랐소. 큰돈 벌기에는 이만한 게 없지”라고 말한다. 우드먼은 “일주일에 이런 지폐를 얼마나 만드냐. 10만 페소(600만원)?”라고 묻는다. 우두머리는 그의 물음을 비웃으며 답한다. “10만 페소는 하루면 만들어. 유통할 데가 얼마나 많은데. 택시, 환전소, 심지어 은행까지 말이야”라고 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은행도 반값에 위조지폐를 사서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집어넣는단 얘기다. 이 나라에서는 어떻게 위조지폐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유통될까. 1970년대 중반 독재자 이사벨 페론 대통령 재임 당시 일이다. 반정부 지하조직은 정부를 와해시키기 위해 위조지폐를 대량 생산해 시장에 투입할 계획을 세운다. 통화 공급량이 늘어나면 초인플레이션이 초래되고 정권이 와해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계획은 성공했다.

하지만 위조 기술을 손에 쥔 이들은 이때부터 ‘명분’ 없이 가짜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 기술은 지금도 가공할 힘을 발휘하며 이 나라의 경제를 좀먹고 있다고 우드먼은 증언한다. 그는 이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전설의 위조지폐 제조자인 헥토르 페르난데스와 중개상을 만나고 위조지폐 제조자들의 은신처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

인도 뭄바이에서는 다짜고짜 “내가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를 안내했던 가이드”라며 따라붙는 질긴 관광가이드를 만난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는 잠깐 한눈판 사이 그의 잔에 치명적인 환각제를 타는 여인을 만난다. 우드먼이 직접 체험한 범죄 현장이 스릴 넘치는 한편의 영화처럼 긴박하게 이어진다. 책장도 술술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애널리스트로서 이런 범죄가 가능한 조건에 대한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범죄도 기술과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우디의 건축물로 유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전 세계 소매치기의 집결지다. 이 도시에서는 남의 물건을 훔치다 걸려도 사흘 정도 경찰서 유치장 신세만 지면 풀려난다. 처벌이 가볍다 보니 이곳에 절도범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드먼은 여행지에서 도난이나 사기를 당하지 않는 법 10가지를 말미에 친절하게 덧붙였다. 이런 것이다. ‘술잔을 두고 자리를 비우지 말라. 만약 그랬다면 술을 새로 주문하라’ ‘야간에는 가급적 ATM을 사용하지 마라’ ‘야외에서 식사를 할 때는 의자 위에 가방이나 외투를 걸어두지 마라’….

이 책의 단점은 내로라하는 전 세계 유명 관광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무시무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도시들을 목적지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면 책을 읽고 계획을 변경하고 싶을 정도로 이 책에서 전하는 상황은 충격적이다. 안 그래도 평소 염려가 많아 뭐든 신중하게 고려한다면 굳이 이 책을 읽고 여행지에 대한 걱정을 늘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