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고려장 사회” 세계 최고 노인 자살률 읽는 법

입력 2019-01-05 04:01
2019년 대한민국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한국의 논점 2019’는 한국사회의 쟁점을 살피면서 동시에 해법까지 제시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시민들. 뉴시스
한국의 논점 2019/고한석 등 지음, 북바이북, 420쪽, 2만원

2019년 대한민국은 언제나 그랬듯 연중 내내 시끄러울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질 것이며 사회 곳곳에선 갈등과 충돌의 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질 게 확실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딱 떨어지는 해법을 제시하진 못할 테니 한숨과 비관의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논점 2019’는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조타수 역할을 해줄 만한 책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2016년부터 매년 새해를 앞두고 이듬해 한국사회의 변화를 내다보거나, 산적한 난제의 돌파구를 제시하는 ‘한국의 논점’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즉,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인데 신작엔 각 분야의 이름난 필자 44명이 써 내려간 글 42편이 푸짐하게 실려 있다.

저자들이 각각 내놓는 주장을 불문곡직하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미리 말하자면 어떤 주장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독자에 따라서는 고깝게 여겨질 만한 내용도 없지 않을 거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이 시리즈가 많은 이들에게 요긴한 참고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 일단 필자들이 2019년의 ‘한국의 논점’이라고 지목한 게 무엇인지 살펴보자.

“대한민국은 고려장 사회”

‘한국의 논점’은 공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취지에서 기획된 시리즈다. 전작인 ‘한국의 논점 2018’에서 저자들이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키워드”로 내세운 건 개헌과 한반도 평화. 그렇다면 신작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이슈는 무엇일까.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됐다. ‘경제를 바꾸기 위한 제언’ ‘사회를 바꾸기 위한 제언’ ‘미래를 바꾸기 위한 제언’ 순으로 뼈대를 세운 뒤 각각 이들 주제에 걸맞은 글들을 엮어놓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들이 가장 먼저, 제일 무게감 있게 다루는 분야는 경제 문제다.

제조업의 위기를 살핀 글을 시작으로 지지부진한 논의가 이어지는 국민연금 문제를 다룬 내용,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부동산 시장을 파고든 글이 차례로 등장한다. 한국사회의 첨예한 이슈라고 할 만한 것들을 한데 그러모았는데, 눈길을 끄는 대표적인 글들만 추려서 살펴보도록 하자.

정책혁신가 최병천은 한국사회 불평등의 실태를 분석했다. 그의 펜이 조준한 과녁은 노인 빈곤 문제다. 2013년 기준 한국의 빈곤율은 14.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빈곤율(11.1%)과 비슷하다. 문제는 노인 빈곤율이다. OECD 평균 노인 빈곤율은 11.4%인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9.6%에 달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인의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1985년과 2015년을 비교했을 때 70대 노인의 자살률이 286% 늘었고, 80대 이상은 447% 증가했다. 이 같은 불평등 양상은 해외 저명한 학자들의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지극히 한국적인 문제다. 최병천은 “한국은 어르신들을 고려장으로 꾸준히 내보냈던 것”이라며 “(한국은) 세계 최고의 노인 빈곤율과 세계 최고의 노인 자살률을 보여주는 나라가 됐다”고 강조한다. “만일 어떤 정부가, 어떤 연구소가, 어떤 학자가 ‘불평등 해소’를 정책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데, ‘어르신 빈곤’에 대한 과감하고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아직 분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한국에서 불평등을 줄인다는 것은, 고려장 사회를 종식시키기 위해 강력하고 창의적인 노후 안전망 정책 패키지를 실천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신산업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규제 혁신이 시급하다는 내용을 다룬 챕터도 주목할 만하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인 최성진의 주장은 이렇다. “신산업은 일단 돕는다는 생각부터 가져야 한다. …법령이나 제도 개선 없이 부처의 적극적인 해석만으로 풀 수 있는 규제가 32%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공무원이 신산업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다가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는 사후에 감사나 결과 책임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장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2019년 대한민국, 이렇게 바꾸자

‘한국의 논점 2019’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속속들이 살피는 데 안성맞춤인 신간이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일급 강사들이 차례로 등장해 꼭 알아야 할 포인트를 하나씩 짚어준다. 이런 책이 흔히 그렇듯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완독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관심이 가는 챕터만 발췌독해도 되고, 가까이에 두고 특정 이슈가 불거졌을 때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한마디로 깊이와 넓이를 두루 갖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는 이게 과연 실현 가능할까 싶은 파격적인 제안도 여럿 담겨 있는데, 교육평론가 이범의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교육개혁의 핵심 가치로 ‘공정’ ‘선진’ ‘자유’를 꼽으면서 교육개혁의 방향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설명한다. ①입시를 과목별 논술형 시험으로 개편하자. ②교사에게 훨씬 더 넓은 재량권을 주자.

하지만 어떤 교육개혁 방안도 지금처럼 대학 서열화의 구조가 단단한 상황에서는 별무소용일 수밖에 없다. 진보 교육계에서는 서열화의 수준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으로 ‘국립대 네트워크+공동 입학제’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수도권에 국립대가 몇 안 되는 상황에선 실효를 거두기 힘든 방안이다. 이범은 “(사립대를 상대로) 대규모 재정 지원을 약속해 서울과 수도권 사립대를 공동 입학 네트워크로 끌어들이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과연 이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이범은 “파격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다룬 글들도 인상적이다. 예컨대 지상파 방송의 몰락 속도는 많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2017년 지상파 미니시리즈 38편 가운데 시청률 10%를 넘긴 작품은 20편이었지만 지난해엔 고작 7편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때 “중세 교회보다도 더 강력한 영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던 지상파 메인 뉴스의 영향력도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TV를 ‘본방 사수’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의 행선지는 넷플릭스와 유튜브다. 미디어오늘 대표인 이정환은 “콘텐츠 패키지가 급격히 해체되고 있고 지배적인 콘텐츠 채널도 사라지고 있다”며 “2019년에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좀 더 강력한 플랫폼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이 변수이지만 ‘본방 사수’ 문화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지상파가) 광고 플랫폼으로의 매력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대형 할인마트와 같다. 질 좋은 상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겠지만, 동네 구멍가게가 모두 문을 닫고 나면 거대 자본이 시장 전체를 장악하고, 여론과 우리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