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노랑, 보라…. 화려한 색들이 추상적인 화면을 연출하는 캔버스가 압도적이다. 너무 강렬해 자극적일 정도로 느껴지는 이 색들은 매맞은 여성들의 멍 자국 사진의 픽셀을 확대한 노승복 작가의 ‘1366 프로젝트’이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의 일’전은 지난해 ‘미투 운동’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가 된 페미니즘을 미술로 풀어놓은 전시다. ‘센’ 전시 내용에 비해 전시 제목이 심심해 아쉽다.
1366은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위한 긴급 전화번호다. 2002년 이곳에서 1년간 자원봉사를 하면서 매맞는 여성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노씨는 지난 연말 간담회에서 “멍이 빠지면서 처음의 짙은 보라는 주황, 노랑으로 변한다”며 “그걸 선명히 부각함으로써 가장 무서운 게 은닉된 가정폭력이라고 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파 작가는 우리 사회 금기어인 여성의 성적 욕망, 생리적 현상을 특유의 눈 달린 유기체로 표현했다. 리금홍은 이름이 불리지 못한 채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선물하고 각자의 얘기를 아카이브처럼 전시했다. 이 밖에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회화로 표현한 박자현, 남성의 욕망을 타자화한 드로잉을 선보인 고등어 등 11명의 여성작가가 초청됐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빨랫줄에 걸린 한복 치마 3벌이다. 정정엽 등 여성미술가 10인이 결성한 예술그룹 ‘입김’이 2000년에 선보인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를 재현했다. 당시 그들은 가부장주의의 상징인 종묘를 여성미술축제의 장으로 바꾸려 했는데, 전주 이씨 종가의 반발로 작품이 철거되는 수난을 겪었다. 법정 공방을 벌이며 여성주의 문제를 환기하는 데 기여했던 이 작품을 재설치함으로써 “페미니즘은 진행 중”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2월 24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 전문기자 yosohn@kmib.co.kr
은밀한 폭력에 맞서… 진화하는 페미니즘
입력 2019-01-05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