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 없이 ‘情’에 치중한 과거 경협… 정치 상황따라 춤췄다

입력 2019-01-02 04:02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간 남북 경제협력은 ‘햇볕정책’이라는 큰 우산 아래에서 ‘실리’ 대신 ‘정(情)’을 출발선으로 삼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4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한국 특파원과 나눈 대담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북 송금의 적절성에 대한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잘사는 형이 가난한 동생을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분단의 골을 메우려면 경제강국 한국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이다.

‘정’을 현실경제로 끌어들이는 역할은 민간이 맡았었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일대 8개 지구의 독점 개발권과 호텔 등 9개 분야 사업권을 따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김대중정부 때인 1998~2002년 51만6320명이 현대그룹의 ‘금강호’를 타고 금강산을 직접 눈에 담았다.

개성공단이라는 작품도 탄생했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 본격 가동된 개성공단에는 124개 기업이 둥지를 틀었다. 1998년 2억22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남북 교역액은 개성공단을 기반으로 2005년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2008년 한국동북아논총에 기고한 논문에서 “대북 포용정책은 비핵화와 남북 공동번영 측면에서 타당·실용성을 검증받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에 바탕을 둔 남북 경협은 ‘정치 바람’에 쉽게 휘둘렸다. 남북 경협은 이명박정부에서 급격히 경색됐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7월 관광객이 북한군에게 피살되면서 전면 중단됐고 개성공단은 바람 앞 촛불처럼 흔들렸다. 2016년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은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피해는 기업 몫이었다. 금강산 관광 시행사인 현대아산이 입은 피해액은 관광 중단 이후 10년간 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개성공단기업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입주기업들이 2016년 말 기준 1조5000억원의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총 3조원의 민간 피해를 부른 원인 중 하나는 ‘안전장치 부재’다. 그동안 공표됐던 남북 공동성명은 양측의 접근방식에만 치중했다.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구제책은 없었다. 문재인정부의 남북 경협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다 ‘대통령 5년 단임제’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나마 다행은 보완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일단 북한이 물꼬를 트려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라는 ‘브레이크’만 풀린다면 일단 출발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자구도 형성이란 안전장치도 가시권에 들어와 있다. 김 위원장은 “국제경제 사업에서 중심을 틀어쥐고 경제 활성화를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주요국의 대북 투자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다자구도를 찬성하지만 ‘남한의 역할’ 정립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장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장은 “남한 기업이 배제되지 않도록 신뢰관계를 가져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