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인 지난 25일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오상운 신부)는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서 고시원 화재 피해자 추모 성탄 예배를 드렸다. 국일고시원은 지난 11월 9일 화재 참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당한 곳이다. 예배에서 여재훈 대한성공회 신부는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고시원에서 지내는 어르신들이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며 “주님은 고시원 이웃과 같이 가난한 자의 구세주이며 소외된 이를 위해 오신 분”이라고 설교했다.
이날 예배엔 조병렬(41) 집사도 참석했다. 그는 화재 당일 고시원 201호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경기도 화성에 가족을 둔 조 집사는 서울 시내 직장에 다니기 위해 평일은 고시원에서 지낸 평범한 가장이었다.
“처음엔 싸움이 난 줄 알았어요. ‘나 죽어’라는 비명밖에 안 들렸습니다.” 지난 27일 국일고시원 앞에서 만난 조 집사는 그날 오전 5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불길을 피해 뛰쳐나온 사람은 속옷 차림이거나 양말 없이 슬리퍼만 신은 채였다. 1시간이 지나자 시신이 한 구씩 들려 나왔다. 그 모습이 꿈에 계속 나와 지금도 2시간 넘게 잠이 들지 못한다고 한다. 참혹했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다.
그는 서울 중랑구의 한 장로교회 청년부 부회장과 성가대원을 맡았을 정도로 신실한 성도였다. 아들과 딸 남매를 둔 아버지이기도 하다. 경기도 화성의 임대주택에 당첨됐지만 홀로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다. 새 집이 멀다는 이유로 청계천에 위치한 직장을 옮길 수도 없었다. 다른 고시원의 월세가 38만원이라면 국일고시원은 30만원. 조 집사는 “몇만원이라도 아껴 아이들에게 맛있는 거 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어 국일고시원에 오게 됐다”고 했다.
조 집사는 사고 이전 평범했던 삶을 이야기했다. 주일 예배 후 가족 성도들과 차를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보냈던 시간이 행복했다. 토요일이면 전도회 친구들과 볼링을 치는 재미도 있었다. 평일이면 용달차를 끌고 서울·경기도 지역을 다니며 호스 판매와 영업 일을 했다. 퇴근 후 좁은 고시원에 돌아와야 했지만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화면으로 두 살배기 막내의 재롱을 보는 일이 감사했다.
조 집사는 화재 참사 후 일에 집중할 수 없어 직장의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화성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다. 그는 “고시원에 설치되지 않은 스프링클러, 15분째 펴지지 않던 구조 사다리 등이 못내 아쉽다”며 “한국교회 성도들이 단 5초만이라도 집 없는 이들과 화재로 고통 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 준다면 안전하고 살 만한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펴지지 않던 구조 사다리 못내 아쉬워… 당시 참혹한 기억 떠올라 악몽 시달려”
입력 2019-01-01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