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휴가, ‘워라밸’ 강조한 문재인정부서도 많이 못 갔다

입력 2018-12-31 19:21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공무원의 평균 휴가일수는 별반 차이가 없다. 장차관을 제외한 5급 이상 공무원의 2017년 연가사용일수는 9~11일에 그쳤다. 8~10일 수준이던 2016년과 엇비슷하다.

일이 많아 휴가를 못 가기 때문이지만 정작 공직사회에서 불만은 그리 크지 않다. 정부부처별로 남는 운영비를 연가보상비로 주기 때문이다. 다만 연가보상비를 노리고 일부러 휴가를 쓰지 않는 일부 공무원이 있어 ‘워라밸’ 확산은 더디기만 하다. 민간기업처럼 억지로라도 휴가를 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인사혁신처의 ‘연가사용 현황’을 보면 2017년 고위공무원(1~3급)은 평균 21.8일의 연가 중 9.0일을 썼다. 사용일수는 직급이 낮을수록 높아졌다. 4급 서기관과 5급 사무관은 각각 21.9일, 21.4일 가운데 10.8일, 11.4일을 사용했다. 주어진 휴가의 절반 정도를 소진한 것이다.

정권 교체는 공무원의 연가 사용일수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16년에 고위공무원은 8.2일을 썼고 서기관은 10.3일, 사무관은 10.9일을 소진했다. 직급에 따라 0.5~0.8일 정도 휴가를 더 쓰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부처별로 되레 연가 사용률이 떨어진 곳도 있다. 전체 48곳의 정부부처를 살펴보면 9곳이 2016년보다 2017년에 더 못 쉬었다. 일자리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를 비롯해 공정거래위원회, 검찰청, 국무조정실, 국무총리비서실, 국민권익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가 이에 해당한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일이 많아진 게 주된 원인이다.

그런데 불만은 크지 않은 편이다. 연가보상비라는 ‘당근’이 있어서다. 부처마다 연말이 되면 운영비로 쓰고 남은 돈을 연가보상비로 지급한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1인당 12일치를 지급했다. 돈으로 워라밸을 대신한 것이다. 연가보상비를 줄 거라는 기대감에 일부러 휴가를 안 가는 ‘얌체족’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바쁘면 몰라도 안 바쁜데도 연가보상비를 타려는 이들을 보면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민간 기업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신한생명, 하나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여름휴가를 2주 이상 쓰도록 종용하고 있다. 연가보상비를 아예 안 주는 기업도 있다. 대신 ‘연차계획제’를 시행해 사원마다 연차 사용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연내 소진을 권장한다. 신 의원은 “민간에만 ‘워라밸’을 강조할 게 아니라 정부 스스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연가사용 실적을 업무평가에 반영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