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만학도 “아직도 나는 늙지 않았다. 새해엔 대학원생”

입력 2018-12-31 18:53
신태성 할아버지가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에서 밝은 표정으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새해 91세가 되는 신 할아버지는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대학원 과정에 최근 합격했다. 권현구 기자

2014년 어느 겨울밤, 신태성 할아버지는 TV를 시청하다 ‘방금 내가 뭘 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TV를 틀어놨지만 기억나는 내용이 없었다. 당시 나이는 86세. 비슷한 연배 대부분이 기억력 감퇴로 고생하는 시기여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 할아버지는 ‘마치지 못한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해 끝내자’고 결심했다. 그는 다음 날 곧장 대학교를 알아봤다. 이듬해 3월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에 편입했고, 2018년 8월 졸업장을 받았다. 신 할아버지는 “나이 먹고 다시 학교로 가는데 걱정이나 망설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영 멍청하게 되는 게 더 두려웠다”고 말했다.

신 할아버지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91세가 되는 새해엔 대학원생이 된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가만히 앉아서 죽는 날을 기다리면 안 돼요. 아직도 나는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160㎝가 조금 넘는 작은 체구였지만, 눈빛과 말투는 시종일관 또렷했다.

91세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으로 치부하기 쉬운 나이지만 신 할아버지에게는 “한 살이라도 더 젊은 나이”였다. 그는 대학원 면접에서 “대학원에서 공부하느라 건강이라도 상하면 어쩌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러니까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공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재치 있게 답했다고 한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강상규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학업 열정과 지식 등이 젊은 대학생들에 비해 빠지는 점이 없어 만장일치로 합격하셨다”며 “무엇보다 마음이 정정하시다”라고 말했다.

신 할아버지는 대학교 3학년이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대학을 중도 포기해야 했다. 53년 휴전 뒤에는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해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신 할아버지는 “전쟁 후엔 다들 이리저리 뛰면서 밥 벌어먹고 사느라 바빴다”며 “도중에 몇 번이나 (대학으로 돌아가길) 생각했지만 일 하랴 애들 교육시키랴, 여건 상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아들 둘을 모두 대학원까지 보낼 정도로 학업을 중시했지만 정작 본인이 대학으로 돌아간 건 65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뒤였다. 가족들도 그런 그를 잘 알았기에 제2의 배움을 응원했다. 신 할아버지는 “아내는 제가 하는 모든 일에 박수쳐준다”며 “아들 둘도 학교에 복귀한다고 말하니 칭찬해주더라”라고 했다.

공부가 재밌느냐는 질문에 신 할아버지는 “공부는 원래 재미없는 거 아니냐. 학교에 다시 가도 모르는 게 너무 많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선 즐겁다. 특히 늙어서도 할 일이 있다는 게 좋다. 지금은 공부가 내 일”이라고 말했다.

신 할아버지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60~70대가 노인 흉내 내면 안 돼. 아주 꼴불견”이라며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 나이도 배워야 하는 나이다.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해지고 정신이 맑아질지 고민해야 한다”며 “책보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가 “50세만 돼도 눈앞이 침침해지는 걸 생각하면 신태성 학우님은 참 대단하시다”라고 치켜세우자 신 할아버지는 “예전부터 건강을 위해 소식했다. 지금도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30~40분은 도수체조를 한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마음이 노령의 몸을 이끌었다. 신 할아버지는 96년 위암 수술을 받아 위를 절제했다. 당시 이미 68세의 고령인 탓에 담당 의사가 수술을 걱정했지만 되레 신 할아버지가 “수술하는 게 뭐가 겁납니까. 잘못될 수도 있는 거고, 잘되면 살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의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데 그럴수록 더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원 진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 할아버지는 “대학원에 떨어지는 건 하나도 걱정 안 됐다. 학부에 또 등록해서 국문학이나 중문학을 새롭게 배울 생각이었다”며 “오히려 학부에 편입해서 그 공부를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그의 삶의 원동력인 셈이다.

신 할아버지는 일본의 전통종교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얼핏 불교신자가 제일 많을 거 같은데 통계를 찾아보니 ‘신도’ 신자가 제일 많았다”며 “대학원에 들어가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요즘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은데, 대일관계도 공부해 도움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