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의 역습’이 새해 글로벌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벗어나는 데 부채가 큰 도움이 됐지만 이제 손을 쓰기 어려운 수준까지 불어났다는 분석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10년간 양적완화라는 새 길을 걸어왔다. 통화 긴축과 경기 둔화가 맞물릴 새해에 ‘부채 폭탄’이 어떤 식으로 작동할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 부실 기업·가계의 빚 상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31일 국제금융협회(IIF)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으로 전 세계 정부·가계·기업 등의 총 부채는 247조 달러(약 27경4787조원)에 이른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약 3배 증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9일(현지시간) 미국 기업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6%에 이르러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소비자들의 주택담보대출도 지난 3분기 기준 10조3000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2.8% 늘었다. 다만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당장 부채를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이다.
단순히 글로벌 부채의 덩치가 커졌다고 해서 위기가 찾아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채의 질이 좋지 않다는 데에서 ‘경고음’이 울린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조성된 저금리 환경 탓에 미국 비금융 기업의 부채는 9조5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BBB등급 채권의 비중은 2006년 30% 미만에서 2018년 50%로 늘었다. BBB등급 회사채는 투기등급(BB등급)의 바로 위다. 투자등급 채권 중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큰 BBB등급 회사채가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기업 이익 증가세가 하향 추세를 보이는 점도 부채 우려를 가중시키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 신흥국의 부채가 크게 증가한 점도 불안감을 키운다. 국제금융협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부채는 2018년 2분기 71조 달러로 전 분기보다 1조 달러 늘었다. 증가분의 80% 이상을 중국이 차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국은 오랫동안 문제가 돼온 기존의 부실대출이 경기 하강으로 위험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초체력이 좋지 않은 신흥국들은 주요국의 긴축 정책에 속도가 붙으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단순히 부채가 많다는 것보다는 그 돈이 어디에서 왔느냐를 봐야 한다”며 “부채를 외국에서 빌린 신흥국은 기초체력이 약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채에 있어서 한국은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 직접적 위험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15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가 위협요인이기는 하지만 한번에 부실화될 가능성은 적다. 하 교수는 “과하게 투기한 사람들은 위험해질 수 있지만 그간 당국에서 금융규제를 강화하면서 대출도 제한해 왔다”며 “부실이 금융시스템으로까지 전이될 가능성은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글로벌 경기 둔화가 국내 기업·가계의 소득 감소 등으로 이어져 부채 부담을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수출이 급감했을 때 경기가 경착륙할 수 있고, 가계와 기업이 부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정부가 확대재정 정책을 쓰거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글로벌 부채… ‘247조 달러’ 폭탄 터지나
입력 2019-01-01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