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시위 “쌍중단 넘어 이젠 쌍궤병행, 대북 제재도 축소”

입력 2019-01-01 04:01
양시위 중국 국제문제연구원(CIIS) 주임이 지난 13일 베이징 연구원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양 주임은 북·미 양측이 비핵화 담판과 평화·안전보장 협상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중단하면 대북 제재도 상응해서 축소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은 쌍중단(핵·미사일 개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동시중단) 관계는 넘어섰으니 비핵화 담판과 평화와 안전 보장을 위한 협상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양시위(楊希雨) 중국 국제문제연구원(CIIS) 주임은 현재 북·미 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는 것은 신뢰의 문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쌍궤병행(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동시 추진)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를 지난 13일 베이징 국제문제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나 한반도 정세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어떻게 보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비핵화에 대한 근본적인 입장 차이 때문이다. 일괄타결 방식이냐,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냐에 대한 불일치다. 이것이 현재 갈등의 근원이다. 미국은 1단계 신고, 2단계 사찰, 3단계 폐기 방식을 주장하지만 북한은 비핵화 전 과정이 단계적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하려면 싱가포르 회담보다 더 큰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 어렵다. 2차 회담 여부는 양측이 비핵화 로드맵을 구체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방문도 마찬가지다. 평양선언보다 내용이 부족하다면 이는 김 위원장이나 문재인 대통령 모두 바라는 게 아니다. 평양선언과 판문점선언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서울 방문이 늦춰져도 상관없다.”

-북한과 미국 중 누가 먼저 물러서야 하나.

“미국은 북한이 완전하게 핵무기를 폐기할 때까지 모든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못 믿겠으면 와서 사찰하라고 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한다면 미국도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게 북·미가 비핵화를 달성하는 방식이다.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미국은 일괄타결,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방식을 제시하는데 여기에는 서로 깊은 불신이 깔려 있다. 북한 입장에서 전면적인 신고는 핵·미사일 기밀을 미국에 모두 공개하는 것으로 국가의 안위 문제와 직결된다. 비현실적이다. 현재 북·미 간 깊은 불신 때문에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먼저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상호 신뢰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종선선언은 신뢰를 위한 조치다. 종전선언은 신뢰 형성에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에 종전선언도 못하면서 핵무기를 내놓으라고 하느냐며 의심을 풀지 못한다. 교착 국면을 타개하려면 종전선언이나 군사적 대립 축소 등 신뢰를 증진시킬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 남북 간 신뢰는 있지만 북·미 간 신뢰는 없다. 북한이 핵·미사일 조치를 취한다면 제재도 상응해서 축소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안 되고 있어 문제다.”

-북한의 비핵화와 개혁개방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나.

“비핵화와 개혁개방은 서로 연관된다. 북한은 지난 4월 핵무기·경제건설 병진노선 완성 선포와 함께 이제 모든 힘을 경제건설에 쏟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선군(先軍)사상과 핵·경제 병진노선이 끝나고 경제건설 시대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40년 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할 당시에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는데 중국의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이게 성공한다면 북한 변화는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버리지 않고서는 개혁개방은 불가능하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미국과 중국의 비핵화 인식은 차이가 있다. 중국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를, 미국 또는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 또는 한반도 절반의 비핵화를 의미한다. 반쪽 비핵화를 추구한다면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 중국은 북·미 간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중국 단어로 ‘허(核·핵)와 허(和·화)’ 두가지 ‘허’로 요약된다. 핵 문제는 북한에 안전을 보장하는 도구다. 만약 핵무기를 폐기할 경우 죽을 수 있다면 북한은 맞아 죽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핵화를 위해서는 영구적인 평화 안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중국은 쌍중단·쌍궤병행을 제안했다. 이미 쌍중단 단계는 넘어섰으니 북·미의 비핵화 담판과 평화·안전을 위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두 바퀴가 함께 돌아가야 한다. 이는 중국 제안이다. 한반도의 ‘허와 허’를 해결하는데 중국은 건의자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미·중 무역협상이 새해 3월 1일 이전에 타결될 수 있다고 보나.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협상 범위가 너무 넓지만 이때까지 타결을 못하면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양측 모두 협상 결렬을 원하지 않는다. 무역의존도가 서로에게 매우 높고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협상이 결렬되면 양국 관계는 총체적인 악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는 쌍방 모두 원하지 않는다. 타결이 안 되면 양국은 하나의 재앙을 맞을 수 있다.”

-미국은 ‘중국제조 2025’에 불만을 갖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은 중국제조 2025를 정치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과학기술 발전에 맞춰 첨단제조업을 발전시킬 산업정책을 갖고 있다. 독일에는 ‘산업 4.0’이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판 산업 4.0이다. 이는 중기 발전계획일 뿐이다. 우리는 2025년까지 계획이 있지만 그때가 되면 중국 제조업에 큰 변화가 나타날까.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주 많은 계획을 만들었고, 제조 2025는 그중 하나일 뿐이다. 이것을 미국을 추월하고 넘어뜨리려는 계획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우습다. 미국은 산업 구조조정계획을 정치화·전략화시켜 아주 바보같은 일을 만들어냈다.”

▒ 양시위 주임은

양시위 중국 국제문제연구원(CIIS) 주임은 한반도·북핵 문제 전문가다. 북핵 6자회담 중국 차석대표로 2005년 9·19공동성명의 초안을 작성했다. 주미 중국대사관 1등서기관·참사관을 지내는 등 대미 외교에 조예가 깊고 영어에 능통하다.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판공실 주임도 역임했다. 이름 시위(希雨)는 농민들의 소망인 ‘비가 내리기를 희망한다(希望下雨)’에서 따왔다.

베이징=글·사진 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