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의 외손녀, 교회의 위로를 받다

입력 2019-01-02 00:01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지난달 26일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한 이스크라 신씨의 머리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고 있다. 소 목사 왼쪽으로 박미하일씨, 김재문 도서출판 상상 대표, 권용관 유송근 새에덴교회 장로.

전일(1882~1938) 선생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함경북도 길주에서 간도 지방으로 이동한 그는 1915년까지 이동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와 함께 활약했다. 3·1 운동 때는 대한국민의회 상설의원이자 내무부원으로 연해주의 3·1운동을 이끌었다. 이듬해에는 한인사회당 중앙총회 선전부장으로 선임돼 항일운동을 펼쳤다. 일제 탄압으로 13년 가까이 옥고를 치렀고 1938년 5월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총살됐다.

이후 오랫동안 잊혀졌다. 2007년 우리 정부가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후손을 찾지 못해 훈장을 국고에 보관했다.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전일 선생의 외손녀인 이스크라 신(67)씨를 찾았고 2015년 1월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훈장을 전달했다.

이스크라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립 미술대학 회화부를 졸업하고 중국을 비롯해 유럽 등지에서 개인전을 꾸준히 열고 있는 서양화가다. 특히 그는 영국 BBC 방송이 ‘아시아의 피카소’라고 평가했던 고려인 3세 고 신순남(니콜라이 세르게이예비치) 화백의 며느리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전일 선생과 후손에 대한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일 선생을 대신해 훈장도 받고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전시회도 열었지만 이내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는 지금 생활고를 겪으며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

파킨슨병 정밀 진단과 치료를 위해 내한,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한 이스크라씨를 지난 26일 만났다. 그는 환자복을 입고 5인 병실에 누워 있었다. 외모는 한국인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한국말 의사 소통이 쉽지 않아 러시아인 박미하일(69)씨가 동행했다. 미하일씨는 ‘러 카타예프 문학상’ ‘쿠푸린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로, 한국과 러시아를 오가며 작품을 쓰고 있다. 아내가 이스크라씨와 친분이 있어 보호자 역할을 했다.

이스크라씨는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까지 오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고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지속돼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파킨슨병인 것 같다고 했어요. 곧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그 순간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한국이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말이죠.” 그는 “물론 의료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화가가 무슨 돈이 있겠어요. 그런데 한국의 한 목사님이 치료비를 대주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라고 했다.

그를 돕겠다고 나선 목회자는 소강석(57) 새에덴교회 목사다.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인 소 목사는 올해로 12년째 ‘한국전 참전 용사 초청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3·1운동100주년 기독교기념사업위원회 역점 사업인 독립운동가 후손 돕기 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새에덴교회 설립 30주년을 맞아 최재형(1860~1920) 선생 추모비 건립 사업에도 나섰다. 최재형 선생은 안중근(1879~1910) 의사의 하얼빈 거사때 권총을 건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시베리아에서 번 전 재산을 털어 의병을 양성하고 32개 한인학교를 세웠다.

소 목사가 이스크라씨 사정을 알게 된 것도 최재형 선생 때문이었다. 도서출판 상상 김재문 대표가 최 선생 친손자 최발렌틴(80)씨를 지난달 초 한국에 초청, 새에덴교회를 방문케했다. 소 목사가 최재형 선생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통역을 맡은 미하일씨가 이스크라씨의 딱한 사정을 소 목사에게 이야기한 것이다.

소 목사는 이날 병원을 찾았다. 이스크라씨가 검사를 받는 1시간여 기다린 소 목사는 치료비 1000만원을 건네고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 전일 선생을 통해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헌신하게 하시고 오늘은 새에덴교회를 통해 그 후손을 돕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속히 낫게 하시고 병을 치료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함께 하여주옵소서.”

기도를 마친 소 목사는 “연해주, 간도 지방에 가보면 이렇게 추운 곳에서 어떻게 독립운동을 했을까 싶다”며 “거기는 살아내는 것이 사명인 곳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게 되니 의미가 깊다”고 했다. 이스크라씨는 “너무 감사하다.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도움을 받기는 처음”이라며 “3·1운동 100주년을 기해 한국에 가족이 생긴 것 같다”고 감격했다. 이어 직접 그린 30호짜리 유화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이스크라씨는 지난 30일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갔다. 파킨슨병 외에도 갑상선에 이상이 있어 6개월치 약을 처방 받았다. 약의 효과 여부에 따라 올 3~4월 중에 다시 내한, 치료 일정을 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