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잇단 ‘오럴 해저드’… 낡은 사회인식이 설화 불렀다

입력 2018-12-31 04:02
바른미래당 전국장애인위원회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관계자들이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을 비난하고 있다(위 사진). 이 대표는 지난 28일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뉴시스
사진=뉴시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비하 논란이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간의 말실수를 두고서도 ‘실수’라는 평가보다는 사회 전반을 바라보는 인식이 노후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당 대표의 잦은 설화(舌禍)는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고 국정 운영에 해가 된다는 점에서도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28일 민주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나왔다. 이 대표는 인사말에서 “신체 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사람들은”이라고 했다가 말을 잘못했다고 정정한 뒤 “정치권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한심하거나 정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표현해 거센 비판을 받자 이 대표는 당일 저녁 사과문을 냈다.

야당은 주말 내내 논평을 내고 이 대표의 말실수를 비난했다. 김병준(사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0일 페이스북에서 “무의식중에 나온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정치적 운명까지 바꾸게 되는 것”이라며 이 대표를 겨냥했다. 이어 “너나없이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그 말과 행동이 비롯되는 생각을 조심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이 대표의 과거 말실수도 다시 불거졌다. 그는 지난 3일 찡 딩 중 베트남 경제부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여성들과 결혼을 많이 하는데, 다른 나라보다 베트남 여성들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고 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식의 설화가 계속 나오는 게 해외 이주 여성이나 장애인 등에 대한 이 대표의 인식이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이 대표 측근들은 전체 맥락을 따져보면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측근은 “(장애인 언급은) 염두에 두고 있던 말이 아니긴 하지만 맥락을 보면 폄하나 비하 발언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애드리브(즉흥발언)를 하다보면 말이 꼬일 수도 있는데 과도하게 트집을 잡고 있다”며 “의도를 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의 실수”라고 주장했다.

당 내부에서는 이 대표 특유의 솔직한 화법이나 분위기를 풀기 위한 우스갯소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표는 지난 10월 ‘20년 집권론’이 문제가 되자 “내가 앞으로 20년 살겠느냐”라는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민주당 관계자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 언론은 조크(농담)에 대해 유별나게 반응한다”며 “여당 대표를 공격함으로써 여당 전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가 있다”고 항변했다.

민주당이 외부 비판을 제대로 직시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집권당 대표로서 정국을 운영하는 위기감이 약하다보니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식의 말실수가 계속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나 상생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 단체는 이 대표의 사과에 만족하지 않고 대표직 사퇴를 요구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이에 더해 민주당의 모든 의원과 당직자들이 장애인 인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른미래당 전국장애인위원회도 “전체 장애인의 인격과 자존감을 짓밟고 약자와 소외계층을 무시하며 자신만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을 드러낸 망언”이라며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심희정 김성훈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