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 갈등’ 아베 노림수, 군비확대·극우결집·보복외교

입력 2018-12-31 04:03
사진=AP뉴시스
일본 방위성이 지난 28일 공개한 영상.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촬영한 것으로, 광개토대왕함과 거리가 아주 가깝다. 한국 전문가들은 위협적인 저공비행이라고 지적했으나, 영상의 자막에는 국제법에서 규정한 고도·거리 이상으로 비행했다고 적혀 있다. 유튜브 캡처
우리 해군 구축함 광개토대왕함이 지난 20일 일본 해상 자위대 초계기(P-1)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를 쐈다는 ‘레이더 마찰’이 한·일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이 초계기가 찍은 영상을 공개하는 등 열흘 가까이 공세를 펴고 있어서다. 과거사 문제로 불만이 턱까지 찬 일본이 보복 외교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대일 외교 전문가들은 일본 측 대응이 상식선을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30일 “일본 정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며 “‘이제는 한국과 문제가 있으면 하나하나 다 따지고 넘어가겠다, 한·일 관계를 생각해서 적당히 넘어가는 일은 없다’는 메시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일본은 문재인정부의 과거사 관련 여러 조치들을 피해자 구제나 인권 문제가 아닌 대일 역사 공세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이에 대한 카운터펀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우리 구축함이 조난당한 북한 선박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을 빌미로 잡고 강경자세를 취하면서 일종의 보복 외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은 레이더 갈등이 불거진 이래 외교부 국장급 대면협의(24일), 국방부 실무급 화상회의(27일)를 열어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일본 방위성은 화상회의 다음 날인 28일 초계기가 촬영한 13분7초 분량의 영상을 전격 공개했다. 영상에는 자위대원들이 “FC(Fire Control·사격통제)계가 나오고 있다”,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전반적으로 광개토대왕함이 사격통제 레이더로 일본 초계기를 조사(照射)했음을 뒷받침하려는 취지의 영상이다.

우리 국방부는 즉각 반박 입장을 내고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광개토대왕함은 정상적인 구조활동 중이었다”며 “우리 군이 일본 초계기에 대해 추적레이더(STIR)를 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광개토대왕함에 탑재된 사격통제 레이더는 탐색용(MW08)과 사격을 위해 표적에 빔을 쏴 거리를 계산하는 STIR이 있다.

아베 신조(사진) 일본 총리가 정치적 이유로 레이더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영상 공개에 부정적이던 이와야 다케시 방위상을 총리 관저에 비공식적으로 불러 공개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 문호 확대 법안 등을 무리하게 통과시켰다가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층인 보수 여론을 결집하고 더 나아가 군비 확대의 명분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결과적으로 지지율 하락에 대한 초조함이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는 있겠지만 실제 결집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해당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인도주의적 구조활동을 하던 광개토대왕함 150m 위로 저공비행하는 위협 행동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150m 저공비행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을 준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소 연구원은 “ICAO 협약 3조에 명확하게 ‘이 협약은 민항기에만 적용되고 (군용 등) 국가 항공기는 제외된다고 돼 있다”며 “일본이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