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로비 근절을 위한 내부 규정을 만든 지 한 달 만에 대형 법무법인(로펌) 소속 전관(前官)이 대담한 로비를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 전관은 공정위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배당에 개입하려 했다. 명백한 로비 행위가 일어났지만 공정위 내부의 신고·제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국민일보에서 취재를 하자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30일 공정위가 자유한국당 김선동 의원실에 보고한 사건 개요에 따르면 공정위 출신 A팀장은 지난 2월 말 자신이 속한 로펌에서 사건을 수임하자 이 사건을 담당한 공정위 B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A팀장은 “‘똘똘한 사무관’에게 이 사건을 배당해 달라”고 요구했다. A팀장 아래에서 일하는 공정위 출신 팀원도 그 즈음에 공정위 실무자에게 비슷한 청탁을 했다.
잇따라 부적절한 로비가 들어오자 B과장은 A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배당은 담당 과장의 고유 권한으로 퇴직자가 관련 발언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항의했다. 이어 “재차 이러한 요구를 해 오면 감사담당관실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B과장은 A팀장의 부적절한 로비 행위를 신고하지는 않았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공정위 공무원의 외부인 접촉관리 규정’에 따르면 사무실 전화를 통한 외부 접촉은 보고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공정위는 올해 8월에야 ‘사무실 전화’도 보고 대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당시 규정에는 접촉 방식과 별개로 로펌 소속 전관 등 외부인의 부적절한 로비 행위를 인지한 경우 신고하도록 돼 있다. A팀장의 행위는 ‘외부인이 피심인 의견서 제출 등 공식적인 절차 이외의 방식으로 사건 처리 방향의 변경 및 처리 시기의 조정 또는 사건 수임과 관련된 청탁 행위’에 해당한다. 문제가 된 사건의 대리인은 A팀장이 아닌 같은 로펌 소속 변호사였다. A팀장은 공식적 절차 외의 방식으로 청탁 행위를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이 전관 로비를 근절하겠다며 만든 이른바 ‘한국판 로비스트 규정’이 시행된 지 채 2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공정위 내부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잘 좀 봐 달라’는 추상적 청탁이 아니라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사건 담당자 배정을 요구하는 행위는 과거 전관예우가 횡행하던 시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감사담당관실은 뒤늦게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를 통해 A팀장의 부적절한 로비 행위가 확인되면 공정위 출입금지 등의 접촉 제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A팀장은 “(B과장에게) 전화한 적이 없다”며 해당 사실을 부인했다.
A팀장은 2014년 공정위에서 퇴직했다. 공정위는 A팀장 취업심사 당시 ‘취업제한 여부 검토의견서’에서 “취업 후 해당 로펌 소속 변호사에게 교육 및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해 공정거래 문화 확산에 기여할 것”이라며 “취업 후 공정위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나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밝혔었다. 김 의원은 “A팀장을 잘못 보증한 공정위나 로비를 받았다고 실토한 후배 과장 앞에서 거짓말하는 A팀장이나 도긴개긴”이라며 “엄중한 조사를 통해 A팀장에 대한 제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단독] “똘똘한 사무관에 맡겨라” 공정위 전관의 대담한 로비
입력 2018-12-30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