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의 엔진과 같은 선수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지난해 호베르투 피르미누(27)를 팀의 핵심으로 꼽았다. 전술 이해도가 높고 헌신적으로 뛰며 공수 전반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신임에 보답하듯, 피르미누는 올 시즌 무패 행진을 달리는 리버풀의 핵심 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피르미누는 30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2018-19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 FC와의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팀의 5대 1 역전승을 이끌었다. 2015년 리버풀 유니폼을 입고 EPL에 데뷔한 후 기록한 첫 해트트릭이다. 축구 전문 통계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은 피르미누에게 양 팀 통틀어 최고 평점인 9.9를 줬다. 그의 활약에 힘입은 리버풀은 리그 9연승과 함께 개막 후 20경기 무패(17승 3무)를 달성했다.
아스널에 0-1로 밀리던 전반 초반 피르미누는 2분 만에 2골을 터뜨리며 주도권을 찾아왔다. 피르미누는 전반 14분 스테판 리히슈타이너(아스널)가 잘못 걷어 내 흐른 공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며 동점 골을 뽑아냈다. 16분에는 수비수 2명을 제치는 드리블 이후에 이어진 중거리 슈팅으로 역전 골까지 넣었다. 아스널의 선수들은 피르미누의 개인기 앞에 중심을 못잡고 넘어졌다. 피르미누는 후반 19분 얻은 페널티킥도 가볍게 성공시켰다.
피르미누는 ‘가짜 9번(False 9)’ 계보를 잇고 있다. 가짜 9번이란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폭넓게 뛰는 중앙 공격수다. 이전 팀인 분데스리가 ‘TSG 1899 호펜하임’에서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피르미누는 클롭 감독의 지도 하에 포지션을 바꿨다. 변화는 적중했다. 처음 두 시즌 동안 11골과 12골을 넣은 피르미누는 점차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며 지난 시즌에만 27골을 몰아쳤다. 피르미누는 올해 초 “스트라이커 포지션에 익숙해지고 있다. 남은 커리어 동안 계속 이 자리에서 뛰고 싶다”라고 했다.
피르미누의 강점은 왕성한 활동량과 빼어난 연계 능력이다. 피르미누가 위치를 가리지 않고 많이 뛰는 만큼 공간이 만들어진다. 볼 컨트롤이 좋고 시야가 넓어 동료를 지능적으로 활용하는데도 능하다. 함께 뛰는 모하메드 살라와 사디오 마네 등이 득점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는 이유다. 양발을 두루 쓸 줄도 안다. 올 시즌 리그에서 터뜨린 7골 가운데 3골은 오른발, 2골은 왼발에서 나왔다. 나머지는 헤더로 넣었다.
쉴 새 없는 전방 압박으로 ‘최전방 수비수’라는 별칭도 얻었다. 18살 때까지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피르미누의 수비 실력은 웬만한 수비수 못지않다. 좋은 체력과 위협적인 태클을 바탕으로 최전방에서부터 몸을 아끼지 않고 상대의 역습을 저지한다. 클롭 감독이 “피르미누는 공을 잃으면 곧바로 되찾기 위해 달려든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다.
지난 시즌 득점왕인 살라의 활약으로 존재감이 가려진 느낌도 없지 않지만, 축구계의 레전드들은 ‘언성 히어로(숨은 영웅)’를 알아본다. 아스널의 레전드인 티에리 앙리는 지난 5월 “EPL에서 가장 완벽한 스트라이커는 피르미누”라고 극찬했다. 리버풀의 중앙 수비수였던 제이미 캐러거도 “피르미누는 EPL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선수 중 하나”라며 “그는 클롭 감독에게는 가장 중요한 선수일 것”이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가짜 9번’ 피르미누, 무적 리버풀 움직이는 엔진
입력 2018-12-30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