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감된 임금으로는 생계 어려워… 가장이기에 떠납니다”

입력 2018-12-30 19:41

“우리는 정말 일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침통한 마음으로 사직서를 냈습니다. 임금 변칙 삭감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을 원합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3년 넘게 일하다 정든 일터를 떠나게 된 부산 남구 엘지메트로시티(사진) 아파트 경비원 박모(64)씨는 계약만료를 하루 앞둔 30일 “정들었던 초소 근무도 이제 마지막”이라며 참았던 눈물을 훔쳤다. 박씨는 “자식들이 직장도 찾고 결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더 일해야 한다”고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2004년부터 6차에 걸쳐 건립된 이 아파트는 모두 8523세대로 단일 아파트 단지로는 전국 최대 규모다. 이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회의는 3개월 전부터 단지 내 차량 차단시스템 도입, CCTV 설치, 전문경비업체 선정 등 통합경비시스템을 통한 자동화를 진행하면서 경비원들의 임금을 월 60~70만원 삭감키로 결정했다.

임금 삭감 방법은 경비원들의 근무체계와 시간을 조정하는 것이다. 24시간 격일제에서 14시간 격일제로 근무체계를 바꿔 경비원 1인당 평균 근무시간을 월 235시간에서 159시간가량으로 줄이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임금도 월 수령액 기준으로 평균 180만~190만원에서 110만~12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내년부터는 심야 경비에 투입되는 경비원은 없다. 대신 통합경비시스템을 운영하는 용역회사 직원 10여명이 격일로 조를 나눠 심야 CCTV 감시와 순찰 등의 업무를 맡는다. 주간 근무 경비원 퇴사자의 공백은 용역업체에서 충원한다.

대부분 60대인 경비원들은 “이 임금으로는 생활이 어렵다”며 110명 가운데 85%인 96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사직서를 낸 경비원들은 연말 전원 실직하게 됐다.

한 경비원은 임금삭감 내역을 공개한 벽보를 엘리베이터 안에 붙이며 “삭감된 급료를 받고 소일거리 삼아 일할 수는 없습니다.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기에 떠나게 된 점 해량바랍니다”는 인사문도 함께 붙였다.

아파트 측은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관리비 부담 등을 우려해 입주민 대표자들이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입주민 대표들은 “내년부터 새 통합경비시스템을 도입하고 경비원 근무 체계를 바꾸기로 한 것은 주 52시간 근로가 시작되고 최저임금이 올라 관리비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입주민들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한 입주민은 “110명이 하던 경비업무를 14명이 하고, 특히 심야시간 대 CCTV에 의존하는 경비업무는 불안한 점이 많다”며 “관리비를 조금 인상하더라도 현행 경비원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입주민 대표회의 관계자는 “퇴직금 격차 등의 문제로 사직하는 이들이 많은데 마치 해고를 한 것처럼 비춰져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경비원들과 상생하려고 노력했지만 다수 주민들은 관리비 인상 등에 부정적이어서 자동화 및 통합시스템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