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미국발(發) 정치 리스크에 휘청거렸다. 세계경제 둔화 우려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확실성을 더했다. 최근 국제유가 급락도 한국의 수출 전선에 돌발 악재로 떠올랐다. 올해 악몽 같은 한해를 겪었던 개인 투자자들에겐 새해도 마음 편하게 맞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6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7포인트(1.31%) 하락한 2028.01에 장을 마쳤다. 약 2개월 만에 다시 2020선으로 가라앉았다. 전날 5% 넘게 폭락한 일본 증시에 비해 선방했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선 이미 떨어질 만큼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까지 코스피는 연초 대비 약 18% 하락했다. 올해 국내 증시는 오는 28일까지 열린다.
글로벌 증시는 최근 극도의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앞서 미국과 일본 증시의 급락이 한국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미국 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해임 가능성 등 미국 정치 불안이 방아쇠를 당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이 미국 기업 주식을 살 때”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증시 변동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 이번 증시 하락은 표면적으로는 셧다운 등이 촉발했지만 근본적으로 세계경제 둔화, 미 연준의 긴축 기조가 도사리고 있다. 투자자들의 자금은 위험자산인 주식에서 안전자산인 채권 등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5일까지 아시아 증시에서는 시가총액 5조6000억 달러(6301조원)가 증발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지난달 주식은 팔았지만, 채권은 사들였다.
연준은 경기침체 우려에도 긴축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불만을 터트리면서 파월 의장의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연준에서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적인 얘기를 해주면 증시 반등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파월 의장 해임설이 제기되는 등 실타래가 꼬였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파월 의장도 공개적으로 굴복하기는 쉽지 않다”며 “금융시장에서는 불확실성 해소를 원하는데 정책 당국자들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의 급락세도 리스크를 높인다. 지난 2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42.5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18개월 만에 최저치다. 유가 하락은 단기적으로 금융시장에 호재가 될 수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원자재인 유가가 하락하면 미국의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고, 이는 연준 기준금리 인상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유가 하락의 장기화는 한국 수출에는 나쁜 영향을 미친다. 중동 국가의 재정이 악화돼 해외건설 수주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 경제에 가장 위험이 되는 신호”라며 “다만 유가 하락이 수요 측면보다는 산유국들의 감산 이행이 되지 않아 생긴 측면이 있다. 내년엔 정상화가 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가치 대비 저렴한 상태라는 데는 대체로 공감한다. 김 센터장은 “현재 국내 증시의 가격은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라며 “내년에 경기가 크게 좋아지지 않더라도 주가 회복의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트럼프發 악재에… 코스피도 1% 넘게 ‘털썩’
입력 2018-12-26 19:28 수정 2018-12-26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