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의 작심발언 “한국경제는 냄비 안 개구리, 곧 화상 입기 시작”

입력 2018-12-26 18:51 수정 2018-12-26 21:39

박용만(사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을 ‘피부 곳곳에 화상이 생기기 시작하는 냄비 안 개구리’로 비유하며 더 늦기 전에 정부의 파격적인 규제 개혁을 촉구했다. 냄비 안 개구리가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 죽을 정도가 돼도 변화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듯, 한국 경제도 오랜 기간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중장기적인 하향세에 들어선 상황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박 회장은 26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가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는 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냄비 안에 개구리로 살아온 관성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은 냄비 안 개구리가 땀을 뻘뻘 흘리는 시기인데 좀 있으면 화상을 입기 시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회장은 “과거 정부 때부터 고도 성장세가 꺾이고 새로운 이머징 마켓이 나오는 시점에 바꿨어야 했는데 바꾸지 못했다”면서 “과거 모델로 밑에서 올라오는 나라와 힘겨운 경쟁을 하면서 버티고 있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규제와 제도에 막혀 못 올라가고 있다”고 현재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기업 관련 발의 법안이 1500건이 넘는데 그중 833건이 규제 법안이다. 지금도 규제 때문에 죽겠다는데 더 규제할 게 뭐가 있나”라며 “국민 일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제가 다수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수준까지 갔다. 시대에 맞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규제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의 규제 시스템이 성장과 혁신을 막고 있는데 경제 활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하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 회장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의 원인, 해법은 정부, 기업 등 당사자들이 대부분 다 알고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그럼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단기적인 이슈에 매몰되거나, 이해관계라는 장벽에 막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해결이 안 된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왔기 때문에 결국 경제가 구조적인 하향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구조적인 하향세를 벗어나기 위해선 성장이 더뎌진 주력 산업 중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은 도태되도록 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성장이 가파른 신규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어느 산업이든 성숙기에 접어들면 경쟁력이 없는 곳은 도태돼야 생태계가 정상적으로 유지되지만, 정치적 판단 때문에 산업 전반에 활력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또 성장을 이끌어야 할 신규 산업은 규제에 막혀 출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박 회장은 최근 카풀(승차공유) 등 신산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갈등이 발생하는 분야는 운수, 소매, 음식, 숙박 4대 생활서비스업이다. 유난히 영세 상인들이 많아 생존에 위협을 느낀다. 반면 일반 국민은 IT를 기반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한다. 둘 다 무시할 수 없는 욕구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냥 내버려 두면 모든 구성원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기 때문에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갈등 해결 메커니즘을 만들고 설득할 것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또 협력이익 공유제 등 사회적 논란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 싶어 하지 않아서다. 국민운동 차원의 분위기 조성 같은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회장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그는 “부총리, 정책실장 등 전화를 하면 언제 어느 때나 다 만나준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열려 있다”고 소통 면에서도 후한 점수를 줬다. 그는 “방향은 잘 잡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정책이 수행되는 과정에서 디테일을 원래 취지에 맞게 잘 살려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또 “성장이냐 분배냐를 선택하는 이념적이고 소모적인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규제나 제도의 플랫폼을 바꿔 성장을 용이하게 하고, 동시에 양극화 해소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통해 분배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