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물 아이 좋아] 육아는 퇴근도 없이 힘든 일… “이번엔 내가 할게”

입력 2018-12-27 00:00 수정 2018-12-27 00:11
황인호 기자
지난달 9일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정확히 7개월 만이다. 언젠가 해야지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빨랐다. 어쩔 수 없었다. 아내의 복직이 당겨졌다. 임신과 출산으로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한 아내에게 “이번엔 내가 할게”라고 큰소리쳤다. 회사에 말하기까지는 그로부터 2주가 걸렸다. 가뜩이나 부족한 인력에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얘기를 선뜻 꺼내기는 어려웠다. 용기를 내 육아휴직을 했던 선배들이 없었다면 아마 끝내 입을 떼지 못했을 것이다.

낳는 것만 생각했지 기르는 걸 생각 못했다

바보 같게도 아기를 낳으면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당연히도 아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며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덕분에 온갖 노력을 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빠졌다. 모르는 사람들은 보기 좋아졌다며 무슨 운동을 하는지, 혹시 따로 먹는 약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아기를 낳아 기르라고 추천했다.

아내 말로는 아기가 태어나고 91주 차까지 힘든 시기가 10번은 찾아온다고 한다. 5주 차쯤 됐을까. 아내는 육아지침서인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를 보여주며 이번 주는 ‘폭풍의 시기’가 될 거라 했다. 이번 주만 버티면 다음 주는 아기가 기분 좋을 시기니 돌보기가 좀 나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폭풍의 시기는 끝날 줄 몰랐다. ‘등 센서’가 켜진 날에는 꼬박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안겨 잘 자다가도 눕히면 자지러졌다. 백색 소음이 아기 자는 데 좋다기에 입으로 ‘쉬’ 소리만 1시간 넘게 내봤다. 효과는 탁월했지만 아기보다 내가 먼저 곯아떨어졌다.

아내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날이 많아졌다. 호기롭게 아내에게 자유시간을 주고 ‘독박 육아’를 자청했다. 예능에서 봐온 육아는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돌도 안 지난 아기에게 된통 당했다. 모든 게 서툴렀다. 퇴근 후 잠깐 경험한 육아는 육아가 아니었다. 종일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니 정신이 멍해졌다. 산후우울증이 괜히 오는 게 아니다 싶었다. 아기는 엄마가 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멈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하루 독박 육아를 한 후 육아휴직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기본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육아도 일이다

육아는 일이었다. ‘투 잡’을 뛰는 기분이 들었던 건 이 때문이었다. 더 고역인 건 퇴근이 없다는 점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동료들에겐 퇴근하며 “출근하러 갑니다”고 했고 아내에겐 출근하며 “퇴근 합니다”고 했다. 아내는 아침 일찍 퇴근하는 나를 부러워했다.

집과 일터의 밸런스를 맞추는 게 쉽진 않았다. 어느 순간 양쪽 모두에 미안한 사람이 돼 있었다. 한 가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결정의 순간은 빨리 찾아왔다. 아내 복직 날짜가 확정되면서 아기 볼 사람을 구해야 했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가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아버지는 최근 새 직장을 얻었고 장모님 역시 직장일로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돌도 안 지난 아기를 어디 맡길 순 없었다. 이번엔 내 차례였다.

친한 지인에게 육아휴직을 할 생각이라고 말하니 “그게 가능하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자기네 회사에선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먼저 쓴 선배들이 있다”고 하니 놀라워했다. 최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은 2008년 1.2%(355명)에서 지난해 13.4%(1만2043명)로 상승했다. 그러나 이에 비례해 쏠림현상도 심화됐다.

같은 직장에 남성 육아휴직을 한 전례가 있다는 건 축복이었다. 그들이 물꼬를 텄기에 나 역시 육아휴직을 마음먹을 수 있었다. 선배 중 한 명은 소식을 듣고 전화로 “느슨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도 해줬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육아보다 휴직에 초점을 맞추는 주변 시선을 염려한 말이었다.

남성 육아휴직은 저출산 대책이 아니다

육아휴직 결심을 회사에 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출산 극복 시리즈의 일환으로 남성 육아휴직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시작도 하기 전에 무슨 얘길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보다 먼저 남성 육아휴직이 저출산 대책과 묶이는 게 마음에 걸렸다.

흔히 저출산 대책으로 남성 육아휴직을 꺼내곤 한다. 그러나 육아휴직의 목표는 아이를 기르는 데 있지 아이를 낳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실제 남성 육아휴직자는 늘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올해 합계출산율이 사상 처음으로 1.0명 밑으로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남성 육아휴직은 오히려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대책에 더 가깝다고 본다.

다행히 정부는 출산율만 바라보던 정책에서 아이와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남성 육아휴직 역시 양육환경 개선 측면에서 바라본다. 삶의 질이 낮으면 가족생활에 대한 욕구도 낮아진다.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한 ‘N포세대’론이 이를 증명한다.

1년 뒤 지금 했던 고민을 또 할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나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한 상태에서 아기를 돌봐줄 누군가를 찾고 있을 수도 있다. 육아휴직을 했거나 할 예정인 지인들은 하나같이 “남성 육아휴직은 저출산 대책이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아이들을 돌봐 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남성 육아휴직은 일시적”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