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국, 스웨덴이 1840∼60년대 변화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한 건 걸출한 정치 지도자 덕분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에도
국민통합과 정치개혁을 이끌 지도자 절실한 상황
미국의 정치사에서 1840∼60년대는 위기와 역경의 시대로 기록된다. 국토확장 과정에서 벌어진 미국 원주민과 멕시코와의 전쟁, 철도부설 이권을 둘러싼 부패, 남부지역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100만명에 달하는 흑인노예 해방 문제 등 건국을 위한 영국과의 전쟁 이후 노예 해방을 둘러싸고 현격한 이견이 드러나 남북전쟁까지 치달으면서 자칫 두 나라로 갈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영국 정치사에서 이 기간은 산업혁명의 시대적 변화기에 전개된 기계파괴운동, 노동자의 정치적 권익 확대를 요구한 차티스트운동, 중상주의와 자유무역과의 대척점에서 이루어진 곡물법 제정, 선거부패와의 전쟁, 나폴레옹전쟁 이후 러시아 남하의 저지를 위한 크림전쟁, 군대와 교육계 및 행정조직까지 장악한 기득권층의 부패와 무능 등 국가의 기능 저하와 사회 대립이라는 위협을 경험하고 있었다.
1848년 공산당선언과 2월혁명 후 프랑스 제정의 붕괴가 촉발한 유럽 전역에 걸친 체제개혁 요구는 스웨덴에도 세차고 불고 있었다. 도제제도의 폐지를 통한 수직적 관계의 철폐, 교회개혁과 학교개혁을 통한 의무교육제도의 도입, 행정개혁을 통한 지방자치의 확대, 양원제의 도입 등 굵직굵직한 사회개혁 요구와 함께 기득권의 반대와 저항 등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동시대의 국가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이룬 세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기간 통치했던 지도자 중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걸출한 대통령과 링컨의 전임자 제임스 뷰캐넌, 후임자 엔드루 존슨은 성공과 실패의 교과서다. 링컨은 흑인노예제 폐지와 게티즈버그 연설을 통해 흑인의 진정한 자유를 옹호하고 총칼을 겨눴던 남과 북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18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적인 민주당의 앤드루 존슨을 영입해 국가통합당(National Union)을 기치로 갈라진 나라를 하나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최고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제임스 뷰캐넌은 노예해방 문제를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얻고 지역감정과 갈등을 증폭시켜 결국 나라를 전쟁으로 내몰았고 앤드루 존슨은 링컨 암살 이후 국가통합 정치를 제대로 승계하지 못해 다시 사회분열의 수렁으로 몰아넣어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겼다.
영국의 1840년대 소용돌이에서 정치적 해결을 시도한 정치인은 바로 로버트 필 토리당 당수였다. 그는 자유주의적 시각을 가진 보수정치인으로 당시 국가를 분열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던 곡물법 폐지를 추진했다. 지지세력인 대지주와 귀족세력의 비판을 받으며 곡물의 자유수입과 경쟁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정치적 용기와 통합을 위한 국가비전은 토리당과 휘그당으로 이뤄진 영국의 초기 양당제에서 보수당의 탄생에 씨앗을 뿌린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국가 갈등을 최소한으로 줄이고자 했던 로버트 필은 사이비 보수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지금은 영국의 보수당 탄생과 국가발전에 큰 기여를 한 정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시대 노동자 투표권과 정치권리의 확대, 선거구 개혁, 교육계·군대조직·관료체제 부패개혁 등의 기치로 자유당을 세운 팔머스톤과 그 뒤를 이은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개혁정치는 지금 영국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 웨스트민스터에서 벌어진 정치논쟁은 보수당과 자유당의 사상적 기초를 깔아주었다. 양당 간 벌어진 사상논쟁의 핵심은 바로 정당 이익과 지지세력의 만족이 아닌 국가번영과 국민복리였다.
스웨덴은 1800년대 중반 대변혁의 시기에 로버트 데기어라는 특출한 정치인이 있었다. 그의 통치능력은 전방위적 개혁 시대에 마지막 종착지는 결국 정치개혁에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프랑스가 혁명과 반혁명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의회의 귀족화와 무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종신제인 귀족원과 대주교와 주교들이 자연직으로 갖고 있었던 교회원 등 300년간 유지된 정치조직을 폐지한다는 것은 사실 혁명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국가 통합과 발전을 위해 시대적 요구에 상응하지 않으면 국가 파탄과 분열밖에 없다는 논리로 3차 투표까지 가면서 귀족원의 승낙을 이끌어낸 그의 정치적 뚝심은 그를 위대한 정치인의 대열에 들게 하는 요소다.
2019년 대한민국은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유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혁명, 쿠데타, 점령 등의 비정상적 헌정 중단 한 번 없이 꾸준하게 발전한 세 나라의 공통점은 바로 국가의 위기를 슬기롭게 이뤄낸 시대적 지도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국민통합, 정치개혁, 제도개혁, 기득권개혁, 정당개혁은 170년 전 세 나라가 겪었던 위기의 시대에 내놓은 처방이었다. 과연 역사에서 배우는 지도자가 대한민국에도 나올 수 있을까.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과 교수
[여의도포럼-최연혁] 3국의 역사에서 배우는 리더십
입력 2018-12-27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