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의 두 얼굴, 마음의 병이거나 성공의 약이거나

입력 2018-12-29 00:00
게티이미지
한없이 높은 기준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을 우리는 완벽주의자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타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완벽한 충족’을 강요한다. 이처럼 가혹한 완벽주의자는 스스로나 주변사람에게나 피곤한 존재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진 아귀처럼 만족을 모른다. 다수가 보기에 그 정도면 더할 나위 없다 싶을 때에도 채찍질은 중단되지 않는다. 임무를 완수하고도 더 적은 노력으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책한다. 이쯤 되면 그들이 다다르려는 완벽한 상태가 과연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완벽주의는 성취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건설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인 당신은(혹은 나는) 행복한가” 묻는다면 어떨까. 완벽주의자는 자신이 고수하는 이상적 기준 탓에 성취감보다 좌절감을 주로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좀처럼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과 우울, 분노 같은 부정적 정서에 취약하다. 건강한 완벽주의가 있다면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완벽 추종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목표를 수정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완벽주의자는 드물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 노력하는 자발적 완벽주의가 타인의 기대를 좇는 강박적 완벽주의로 변하기도 한다. 완벽주의가 부지불식간에 자신을 집어삼키고 마는 환상의 괴물이라면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끝없는 채찍질

완벽주의는 반드시 도달해야 하는 완벽한 상태가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지향하는 완벽주의자는 상황이 요구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성과를 자신이나 타인에게 요구한다. 이런 기질은 학업이나 사업과제를 수행할 때뿐만 아니라 외모나 도덕성 등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와 엄격한 평가 기준을 가지기 때문에 늘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한 점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의 가치를 결과물과 생산성으로 평가하며 자신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은 자신에게 많은 의무를 부여하는 탓에 좌절과 그에 따른 분노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완벽주의 기질이 강한 사람들은 성취 불감증을 보인다. 이들은 일을 잘 마치고도 그저 기대한 것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정말 완벽한 사람은 같은 목표를 이루더라도 최소한의 노력을 들인다고 생각해 자신의 성취 과정을 비능률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완벽주의자는 작은 실수도 완전한 실패로 해석해 자신을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완벽 지향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우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는 실수를 두려워하는 만큼 자신에게 일이 맡겨지는 것을 피하려 하고 의사결정 상황에서 머뭇거리는 경우 많다. 회사원 김모(33)씨는 “우리 팀장은 후배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자기 것처럼 꼼꼼하게 손보는 스타일이고 결과물도 좋다. 하지만 신속하게 판단을 내려야 할 때는 지시를 받기까지 너무 오래 걸려 팀원들이 답답해한다”고 말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완벽주의는 병적인 기질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들은 완벽주의자들이 사실상 불가능을 추구하는 만큼 심각한 심리적 문제나 갈등을 경험하기 쉽다고 말한다. 1990년대 초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남자의 21%, 여자의 26%가 완벽주의가 자신에게 극심하거나 상당한 스트레스를 준다고 응답했다. 여러 연구에서 완벽주의는 우울, 수치심, 죄책감, 불안, 걱정, 공격성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존재하지 않거나 달성하기 어려운 완벽에 대한 추구는 섭식장애, 알코올중독, 성기능장애 같은 문제와 관련 있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까, 약일까

완벽주의가 성실성, 만족감, 자부심, 활력 같은 긍정적 정서와도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1990년대 들어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런 견해는 완벽주의를 크게 부정적 완벽주의와 긍정적 완벽주의로 구분시킨다. 두 완벽주의는 완벽 추구 동기와 목적, 스스로 부여하는 기준의 현실성, 완벽 추구 과정에서의 태도, 성취에 대한 만족 여부 등에 차이를 보인다. 건강한 완벽주의로 간주되는 긍정적 완벽주의는 이상적인 자신이 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한 자신을 피하려 하는 부정적 완벽주의와 구별된다. 긍정적 완벽주의는 자유의지로 완벽을 추구하지만 강박 등 신경증적 특징이 강한 부정적 완벽주의는 부모, 교사, 조직 등 외부로부터 강제된 경우가 많다.

건강한 완벽주의자는 현실적 목표를 세우고 성취를 통해 만족감, 기쁨, 희열, 행복감 등을 느낀다. 발전을 추구하면서도 능력과 상황의 한계를 받아들일 수 있고 실패에 무너지지 않는다. 부정적 평가에 대한 공포, 우울, 불안 등 부정적 정서가 낮고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이 높다. 강박적 사고도 덜 한다. 반면 신경증적 완벽주의자는 가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하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고 자신을 심하게 비난한다. 뭘 하든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고 성취 후에도 만족감이 아닌 열등감을 느낀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안해한다.

긍정적 완벽주의와 부정적 완벽주의의 경계가 말로 가르듯 선명한 것은 아니다. 두 경향이 정도를 달리하며 공존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다. 스스로도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하는 이모(41)씨는 “나는 목표를 달성하면 희열과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남들의 부정적 평가를 염려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일을 제대로 끝낼 때까지는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생각과 함께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했다. 완벽주의의 성격이 시간과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스스로 성취를 즐기던 사람이 주변의 기대를 의식하고 완벽 추구를 의무로 여기게 되는 ‘완벽주의의 변질’ 사례는 흔하다. 한 상담 전문가는 “완벽에 가까운 성취를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든 지나친 완벽 추구는 낮은 만족감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짙다”고 했다.

만들어지는 완벽주의자

완벽주의 성향은 주로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학습된 기질로 설명된다. 조건적 사랑을 받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부정적 평가를 피하기 위해 완벽을 추구하는 기질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더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작은 실수로도 사랑을 잃을 수 있다고 믿는다. 완벽주의의 다차원적 성격에 주목한 심리학자 랜디 프로스트는 1990년 완벽주의를 평가하는 6가지 측면을 정의하면서 부모의 기대와 비난을 각각 포함했다. 완벽주의를 사회적으로 발생한 근본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경쟁적 환경은 완벽주의 기질을 강화하는 인큐베이터나 다름없다. 수험생, 운동선수, 예술가 등은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집단으로 거론된다.

전문가들이 흔히 분류하는 완벽주의 유형은 자기지향적, 타인지향적, 사회부과적 완벽주의 등 3가지다. 자기지향적 완벽주의는 자신에게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자기 행동을 가혹하게 평가하는 경향이다. 그 기준을 감당하지 못해 이상적 자신과 실제 자신 간에 괴리가 발생하면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을 경험하게 된다. 타인지향적 완벽주의자는 상대가 일을 완벽하게 해내길 바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배우자와 자녀, 부하직원 등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완벽함을 강요하다시피 한다. 이런 기질은 대인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회부과적 완벽주의자는 남이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엄격하게 평가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거부당할 것이라고 여긴다. 부정적 평가를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남에게 관심과 인정을 받는 데 집착하게 돼 다른 완벽주의 유형보다 병리적 정서를 많이 겪는다. 다른 유형에 비해 열등의식도 높은 편이다. 한 심리 전문가는 “누구나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를 원하지만 그건 완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함으로써 이뤄져야 한다”며 “장점과 함께 약점, 실수도 수용해야 건강한 성격이 형성될 수 있다”고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