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달 21일 합의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는 주된 타깃이 서울교통공사여서 사실상 ‘박원순 서울시장 청문회’가 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조사를 받아들이기 전까지 김성태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이 박 시장을 지키려고 국정조사 수용에 미적거린다고 연일 비판했다.
김 전 원내대표가 쏜 화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되돌아왔다. 김 전 원내대표 딸의 KT 특혜 채용 의혹이 보도되면서 그 역시 국정조사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진 것이다. 다만 김 전 원내대표는 물러서지 않고 역공을 폈다. 그는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환영한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취업 의혹까지 모두 다루자”고 제안했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사 대상자를 놓고 여야가 벌써부터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다. 12월에 예산안으로 충돌했던 여야가 새해 벽두부터 국정조사로 다시 격돌할 전망이다.
역대 국조 결과보고서 채택률 미미
국정조사는 중요한 국가 현안에 대해 국회가 진상규명과 조사를 할 수 있는 수단이다.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이 서명하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할 수 있고, 본회의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국정조사 요구는 대개 야당이 단골로 내세우는 공격 카드다. 하지만 조사 요구에 비해 실제 조사계획서가 승인받은 경우는 많지 않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13대 국회부터 20대 국회 현재까지 100건에 가까운 국정조사 요구서가 제출됐으나 조사계획서가 받아들여진 경우는 28건뿐이다.
이 28건 중에서도 조사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고 공식화(결과보고서 채택)한 경우는 12건(42.8%)으로 채 절반이 안 됐다. 나머지 16건은 여야 이견 등으로 보고서 채택에 실패했다. 여야가 어렵사리 합의해 국정조사를 실시하고도 결과보고서를 채택하지 못한 것은 중대 현안의 진상을 규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정부에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13대 국회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14대 12·12사태와 평화의 댐 건설 및 율곡사업 비리, 18대 미국산 쇠고기 파동, 19대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과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조사 등에서 결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다.
이런 실패 사례가 많은 이유는 국정조사가 진상규명보다는 정치적 공세 수단으로 이용돼 왔기 때문이다. 역대 국정조사 요구 사안을 살펴보면 전임 대통령들의 국정 과실과 관련되는 등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안건들이 대부분이었다.
증인채택·조사범위 놓고 정쟁, 이번엔 다를까
여야가 가장 세게 맞붙는 시점은 국정조사가 시작되기 전이다. 국정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증인 채택과 조사 범위를 정하는 때다. 미국산 쇠고기 국정조사 때는 국무총리 출석 문제로 파행을 거듭했다. 국정원 댓글 국정조사도 국조특위가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위원 구성 문제로 보름 이상 중단됐다.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 선서 거부 등으로 청문회가 공전해 성과 없이 두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정치적 논란이 컸던 사건일수록 성과는 미미했다. 15대 국회 때 한보그룹 부도사태 관련 국정조사가 대표적이다. 청문회를 22차례나 열면서 38명의 증인을 심문하고 1400건이 넘는 자료를 제출받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특혜 비리 의혹을 밝혀내는 데 실패했다. 5·18과 12·12 진상조사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보고서가 채택된 사건은 국민적 관심도는 높지만 여야 정쟁이 첨예하지 않던 사안이었다. 14대 국회 때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15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17대 김선일씨 피랍 살해 사건 등 정치색이 옅은 사안들은 의미 있는 국정조사로 기록됐다.
여야는 국정조사의 성과가 나쁜 데 대한 책임을 늘 서로에게 묻기 바빴다. 세월호 국정조사는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공방 끝에 정부 기관보고만 받고 끝나 ‘최악의 국정조사’로 불린다. 이번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 역시 용두사미로 끝날 것 같다는 우려가 많다. 여야 교섭단체 대표들은 12월 임시국회 내에 조사계획서를 처리하기로 했지만, 이미 임시국회 내 처리는 물 건너간 상황이다. 또 박 시장과 한국당 염동열·권성동 의원(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에 더해 김 전 원내대표까지 조사 대상자로 거론되는 등 증인 채택에 관한 여야 이견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역대 국정조사는 늘 요구서가 제출되는 단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면서 “이번에도 동료 의원을 증인으로 세우는 용기 있는 특조위원은 없을 것이어서 증인 채택 단계에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국회 국정조사, ‘볼륨’ 높을수록 성과는 바닥이었다
입력 2018-12-29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