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안전사고에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며 나선 시민들

입력 2018-12-26 04:00

시민들 사이에서 ‘내 안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연말 온라인쇼핑몰에서 소방안전상품 판매가 급증했고, 일부 일산화탄소 감지기는 품귀 현상까지 빚어졌다. 종로 고시원 화재나 고양 온수관 파열, 강남 오피스텔 붕괴위험, 강릉 펜션 사고 등 일상을 위협하는 안전사고가 연이어 터지자 발생한 현상이다.

25일 이베이코리아에 따르면 온라인쇼핑몰 G마켓에서 지난달 24일부터 한 달간 소방안전 품목이 판매된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 늘었다. 소방안전품목에는 소화기, 소방호스, 비상구 표지판, 화재경보기 등이 포함된다. 주택용 소방설비로 구분되는 단독경보형 감지기와 소화기는 대다수 5만원 내외면 구입할 수 있다.

온라인쇼핑몰 옥션에선 최근 한 달간 화재감지기 품목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6% 급증했다. 올해 1~11월 판매율이 지난해보다 4%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각종 감지기는 공구 품목에 등록된 모델도 있어 실제 수요는 더 많다고 본다”고 전했다.

특히 사상자 10명이 발생한 강릉 펜션 사고 원인이 무색무취의 일산화탄소로 지목되면서 일산화탄소 경보기·측정기 주문이 폭주했다. 가스보일러를 설치한 일반 가정도 예외일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2만원 이하의 저가형 모델은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경기도에 사는 신모(43)씨는 “집과 부모님 댁에 설치하려고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2개 구입했는데 주문폭주로 1월에 배송이 시작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생각보다 가격이 싸서 놀랐다”며 “펜션 사고 이후에야 의무설치가 논의되고 있다니 선진국에 비해 안전규정이 너무 허술하다”고 했다.

이창우 숭실대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주택에 화재경보기나 소화기를 설치하는 게 의무화 된 지 5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평소 안전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생각해 본다는 건 그만큼 나와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대처능력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동안 ‘안전불감증’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만큼 개개인이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는 행위 자체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2011년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일반 주택에도 소화기와 단독경보형감지기 설치가 의무화 됐다. 새로 짓는 건물뿐 아니라 기존 주택도 지난해 2월까지 주택용 소방시설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지만 단속이 어렵고 법적인 제재가 없어 설치가 더디다. 지난해 전국 주택용 소방시설 설치율은 41%에 그쳤다.

그러나 안전의 책임이 모두 개인의 영역으로 옮겨가서는 안 된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연달아 터진 안전사고는 정부나 기관의 관리·점검 소홀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개개인의 역량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안전에 대한 투자가 소모적이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이상 노후 시설을 유지·점검하지 못해 벌어지는 안전사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경우 예방과 대비에 투자하는 비용이 대응과 복구에 쓰는 비용의 8배 효과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에 대한 개인차원의 교육과 유지·점검에 대한 안전 투자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