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연일 북·미 대화의 문턱을 낮추고 있지만 북한은 핵 협상과 관련해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 제기에 강력 반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계속되는 북한의 ‘침묵 모드’가 다음 주 발표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이달 초부터 계속 대북 유화 메시지를 쏟아내고 있다. 지난 19일 방한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대북 인도적 지원 관련 제재 완화 입장을 밝히고 돌아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최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내년 초 개최 의지를 재확인했다. 백악관의 대표적 대북 강경론자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까지 나서서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대화와 협상의 문턱을 낮추는데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 능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개인 명의 논평 형식을 사용해 발언 수위를 조절했다. 북한은 이 논평에서 대북 제재 해제가 미국의 진정성을 판가름할 시금석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연이은 대화 손짓에도 북한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1주일 후 발표될 김 위원장의 신년사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대미(對美) 메시지를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5일 “북한의 대미 메시지는 신년사에서 드러날 것”이라며 “신년사가 나오기 전 미국에 대한 입장이 나오면 김이 빠질 수 있고, 또 이에 대한 미국의 반응에 따라 신년사 메시지에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북한은 신년사 발표 이후 본격적인 대미 협상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미국의 유화적 움직임이 진정성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 주도 하원 개원을 앞두고 보여주기식인지를 예의주시하는 것 같다”며 “개별 사안에 반응하기보다 중국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들은 미국에 대한 판단을 신년사에 반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김 위원장의 대미 메시지가 원론적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내년 한 해 국가를 운영할 큰 그림을 내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큰 북·미 현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쉽지 않다”며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 준수를 촉구하는 원론적 입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북한 신년사의 대미 메시지는 외무성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 대미 협상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주도한 만큼 신년사의 대미 부분도 강성인 김영철 위원장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예상보다 강경한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北의 ‘침묵 모드’는 김정은 신년사 관심 높이기 전략인 듯
입력 2018-12-25 1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