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의 선봉에 서온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상설화 된 지 308일째를 맞아 이 기구의 운영 방식에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짧은 기간 내 전국 법관을 대표하는 공식 사법기구로 자리매김했지만 운영 체계가 정교하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지난 2월 법관대표회의를 공식 대법원장 자문기구로 상설화했다. 이후 10여개월 동안 법관대표회의를 통해 사법개혁에 필요한 주요 안건들이 의결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달됐다. 자문은 제도 개혁에 그치지 않았다. 법관대표회의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추가 조사를 촉구한 결의는 실제 2차, 3차 추가 조사로 이어졌다. 행정처는 법관대표회의 뜻에 따라 사법농단 의혹 관련 미공개 문건 228건을 공개했다.
지난 6월 법관대표회의는 검찰 수사 촉구안을 의결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곧장 “수사가 진행될 경우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법농단 의혹 규명 작업은 대법원의 관리가능 범위를 벗어났다.
법관대표회의 내부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검찰 수사 촉구안은 과반 찬성으로 의결됐지만 내부 이견이 정리된 상태는 아니었다. 법관대표회의에 앞서 열린 전국 법원 판사회의들은 각기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단독·배석판사 등 소장 판사들 사이에서는 검찰 수사를 촉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반면 중견 법관들은 수사 촉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회의도 신중론을 취했다.
지난달 23일 법관대표회의가 “사법농단 의혹 연루 법관에 대한 탄핵을 검토해야 한다”고 의결하자 수면 아래에서 끓고 있던 내부 갈등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전산망에 글을 올려 “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부산고법 대표 유정우 판사가 소속 법원 판사들의 다수 의견과 달리 찬성에 표를 던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갈등은 대표회의 권한 문제로 이어졌다. 부산고법과 서울고법은 전체판사회의를 열어 “대표 법관의 권한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취지의 안건을 결의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법관대표회의의 현재 운영방식에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법관 권한 범위 등을 명확히 정하지 않은 상태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쳐 이 같은 논란이 예견됐다는 것이다. 대표 법관이 소속 법원 판사의 다수 의견에 전적으로 귀속돼야 하는지, 아니면 직접 회의에 참석한 대표 법관이 재량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지를 놓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모든 유권자가 의사표시하기 힘들기 때문에 대의제를 도입한 국회와 달리 대표 법관은 소속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면서 “다수 의견에 귀속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다수결 의견에 무조건 귀속돼야 한다면 대표 법관은 소속 법원의 대표가 아니라 거수기에 불과해진다”고 반박했다.
모든 안건을 표결로 결론을 내는 것이 정당한지도 고민 대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나의 ‘법관대표회의 의견’을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수사 촉구나 탄핵 필요성 등 양심과 표현의 자유에 맡겨야 할 안건들도 다수결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며 “법관대표회의가 권력기구화 됐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상황이 개선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대표회의가 의견을 논의하는 수준에서 만족하느냐, 큰 사안을 의결하는 게 맞는지 운영상의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상설화 308일째, ‘법관 탄핵’ 갈등으로 표류하는 법관대표회의
입력 2018-12-26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