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무역전쟁·돼지열병… 중국 돼지고기 값 폭등 부른다

입력 2018-12-26 04:00

중국 농림부는 지난 23일 남부 광둥성 광저우 지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 추가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광저우 황푸 지역의 한 대규모 농장에서 돼지 9마리가 돌연 죽은 것이었다. 당국은 또다시 소독과 살처분 등 비상 대응을 시작했다. 지난 8월 첫 사례가 발견된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살처분된 중국의 돼지는 100만 마리를 넘는다.

좀체 잦아들지 않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중국 돼지고기의 가격을 높일 변수로 꼽힌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한 관리는 지난 16일 “공급 부족으로 내년 돼지고기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새해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효과적으로 통제되지 못하면 축산업자들은 과거처럼 사육두수 조절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돼지고기값은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견되기 전부터 오를 조짐을 보였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돼지 사료인 대두(大豆)가 귀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대두 자급률이 14%에 불과하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많은 양을 수입해 돼지를 먹이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통상 마찰이 빚어지자 미국산 대두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수입량은 90% 이상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세가 높은 지역에서 대두를 많이 생산한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강수는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을 생산·소비하는 중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대체 수입처로 꼽힌 아르헨티나의 대두는 기상 여건으로 올해 생산량이 급감했고, 유럽산은 항구의 곡물 수용 능력이 부족해 큰 도움이 못 됐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이 대두 수입 재개를 언급하면서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도 결국 사료 문제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오름세를 타는 중국 돼지고기값에는 단순한 식료품 가격 동향 이상의 의미가 들어 있다.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그 자체가 경제지표 취급을 받아 왔다.

중국 최대 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중국 돼지고기 물가가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미치는 영향은 10% 정도다. CPI가 사실 ‘China Pig Index(중국 돼지지수)’라는 농담도 회자된다.

가벼운 농담만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NH투자증권 안기태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물가가 상승기일 때 돼지고기값 폭등까지 겹쳤던 과거 사례를 보면 중국 경제는 긴축 국면에 들어가곤 했다”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도 악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 돼지고기 가격이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예고처럼 실제 치솟을지는 미지수다. 안 이코노미스트는 “정상회담 이후 대두 수입 재개와 관련한 언급이 있었고, 중국 돼지고기 도매가격은 아직 지난 9월의 고점만큼엔 이르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과 중국의 기싸움에 언제나 불확실성이 있는 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잡히지 않는 점은 여전한 변수다.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는 생산 증가와 가격 하락 국면에 직면한 국내 양돈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진단이다.

중국 돼지를 둘러싼 ‘나비효과’가 글로벌 수산물 시장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국인들이 식탁에 오를 돼지고기를 수산물이나 닭고기로 대체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수산물 중에서는 중국인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참치, 연어가 거론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