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 백마강, 꽃잎처럼 떨어진 여인의 마음이 저토록 붉었을까

입력 2018-12-27 04:01 수정 2018-12-27 17:38
충남 부여 백마강 옆 부산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가 붉은빛으로 주변을 물들이고 있다. 왼쪽 위 백화정 아래 낙화암 전망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은 드론으로 촬영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궁남지와 포룡정의 이색 풍경(위쪽)과 부여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인 능산리고분군.
국립부여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왼쪽)과 정림사지오층석탑을 찾은 관광객.
백마강 유람선.
충남 부여와 공주, 전북 익산의 백제유적지구는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도 선정됐다.

부여는 백제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도읍지다. 538년 성왕이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했다. 신도시로 설계된 사비는 660년까지 123년 동안 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멸망의 처절한 아픔을 맞았던 고도(古都)다.

왕궁 뒤쪽 부소산(扶蘇山·해발 106m)에 축조된 부소산성은 유사시 피신처 및 왕성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했다. 백마강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낙화암(落花巖), 삼충사(三忠祠) 등 백제의 마지막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부소산성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높이 40m 절벽 낙화암이다. 백제 제31대 의자왕(義慈王)의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전해지지만 ‘백제의 궁녀가 삼천명이었다’는 기록은 없다. 낙화암이라는 이름도 궁녀의 죽음을 떨어지는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 후대의 표현이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낙화암 전망대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백제 멸망의 순간 적에게 능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 백제 여인의 비장한 모습이 가상현실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해질 무렵 이곳에 서면 백마강 건너 부산(浮山) 너머로 저물어가는 해가 붉은빛을 토해내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백제가 멸망할 때 7일 동안 화염에 휩싸였다는 부여의 모습이 겹쳐진다.

낙화암 정상에 궁녀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한 백화정(百花亭)이 1929년 세워졌다. 중국 소동파가 해주에 귀양 가 있을 때 성 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百花州)라는 시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백화정에서 가파른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고란초(皐蘭草)로 유명한 ‘고란정’이라는 샘이 있다. 우물에 지붕을 덮은 이후 고란초가 전멸했다고 한다. 부소산성 남쪽 기슭에 백제 왕궁터인 관북리 유적이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은 인근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

부여박물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물이 1993년 능산리에서 발굴된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다. 향로 받침인 다리 부분은 용이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입으로 몸체를 떠받들고 있다. 그 위로 연꽃을 새긴 몸체와 산봉우리를 겹겹이 표현한 뚜껑이 올려져 있다. 뚜껑 꼭대기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봉황이 우아하게 자리한다. 모두 42마리의 짐승, 5인의 악사를 비롯한 17명의 인물과 74개의 봉우리에 펼쳐진 조각이 섬세하고 조화롭다.

인근에 백제를 대표하는 정림사지오층석탑이 있다. 6세기 중엽에 건립돼 1400여년의 시간을 견딘 국보 9호다. 높이 8.33m로, 층마다 쌓여 있는 옥개석(처마) 끝에서 살짝 올라간 모습이 우아하다. 탑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사비성을 함락한 뒤 새긴 ‘평제비명’(平濟碑銘)이 남아 있다.

궁남지는 백제 30대 무왕(서동)이 634년 건립한 인공연못으로 왕비였던 선화공주와의 로맨스로 유명하다. 궁의 남족에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와 못을 만들고 가운데는 섬을 축조했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연못 한가운데 정자 포룡정이 배처럼 떠 있다.

사적 제14호로 지정된 능산리고분군은 ‘백제왕릉원’으로 불린다. 부여백제시대를 지낸 왕들의 무덤이다. 현재 정비돼 있는 가운데 7기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도 고분이 있다. 서쪽에 의자왕 및 그의 아들 태자 융의 가묘가 있다.

▒ 여행메모
부여나들목∼부소산성 10여분… 구드래나루터 주변 음식점 즐비


서울에서 승용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천안분기점에서 논산천안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서공주분기점에서 서천공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부여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부여나들목에서 부소산성 입구까지는 승용차로 10분 남짓 걸린다. 천안논산고속도로 서논산나들목에서 나가 4번 국도를 타고 능산리고분군을 지나도 된다.

고속버스는 서울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여까지 2시간 10분가량 소요된다.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소산성 입구까지는 700m 정도여서 걸어가도 된다. 구드래나루터와 고란사 사이 구간은 백마강 유람선(사진)을 이용하면 편하다.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소산 맞은편 옥천산(158.7m) 자락에 백제왕궁인 사비궁 등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가 있다. 나당연합군에 무너지며 잿더미 속으로 사라졌던 백제 왕궁 등이 17년 동안 복원돼 2010년 문을 열었다.

인근 롯데부여리조트는 10층 규모로 호텔형 객실 310실과 콘도형 객실 88실을 비롯해 레스토랑, 대연회장, 세미나실, 아쿠아 풀, 키즈 클럽등을 갖추고 있다. 부소산성과 정림사지 주변에 모텔이 여러 개 있다.

구드래나루터 주변에 구드래돌쌈밥, 장원막국수 등 음식점들이 몰려 있다. 부소산성 입구 ‘부소산 칼국수’는 직접 재배한 채소를 사용하고, 조미료를 넣지 않아 깔끔한 맛을 낸다.

부여=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