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 명동 구세군 자선냄비에 간간이 동전이 부딪혀 ‘짤랑’ 소리가 났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즐기는 행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지만 대부분 자선냄비를 지나쳐 갔다. 모금활동을 하는 구세군사관학생 이모(31)씨는 “체감상 모금액이 지난해보다 3분의 1 정도 준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점심시간 자선냄비를 찾은 이는 4~5명에 그쳤다.
기부의 손길이 줄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명동거리 구세군 자선냄비조차 얼어붙었다. 불경기가 계속된 게 이유지만 각종 흉흉한 사건 소식에 사회 분위기 전체가 움츠러들고 공동체 의식마저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구세군 자선냄비본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9일 사이 전국 모금액이 27억4401만983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2억6958만2600원보다 16.07% 줄었다고 했다. 구세군은 시민들이 한 해를 돌아보며 주변 이웃을 살피는 연말(11~12월)을 집중모금기간으로 정해두는데 올해는 이 기간 모금액이 목표(65억원)의 42.2%로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이 추세라면 지난해보다 모금액이 7억원 이상 줄어든다. 다른 모금 기관인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역시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21일까지 모금액이 157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정도 적었다.
체감경기가 나빠지면 여유가 줄어 기부액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실무자들은 단순 경기침체보다 공동체성 약화를 더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김기석 자선냄비본부장은 “경기와 모금액에 상관관계가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외환위기로 경기가 최악이던 1997년 말에는 자선냄비 모금액이 오히려 상승했다”고 했다. 어려운 서민층끼리 서로를 도우려는 분위기가 당시엔 크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모금액이 전년도에 비해 크게 늘었던 것도 비슷한 이유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은 전년에 비해 5% 가까이 증가했는데 당시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촛불집회의 결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는 점이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물론 코스피지수 상승 등 경제적 요인도 작용했다.
구세군은 최근 모금액이 줄자 2014년부터 3년간 카드결제 모금 기기를 자선냄비에 설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현금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 세태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실제 카드결제로 모금된 액수는 전체의 1% 미만으로 미미했다.
김 본부장은 “올 연말에는 을씨년스러운 사건이 많이 생기면서 연말 나눔의 분위기가 사라졌다”며 “서로를 불신하는 사회 분위기가 자선냄비 모금액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세금을 피하려는 목적의 상류층 거액 기부 증가도 좋지만 서민층 ‘개미 기부자’가 많을수록 그 사회의 기부문화가 잘 형성돼 있는 것”이라면서 “올해는 연말 휴일이 많아 일시적으로 기부가 늦어졌을 수도 있어 끝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무심한 세상~ 애타는 자선냄비, IMF 때도 늘었는데 올해는 16% 감소
입력 2018-12-25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