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세계 미술시장은 637억 달러 규모로 전년보다 12%나 성장했다. 세계 최대 미술박람회인 ‘아트바젤’과 이를 후원하는 투자은행 UBS는 ‘2018 예술시장 보고서’를 펴내고 이렇게 밝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도르 문디’가 사상 최고가인 4억5030만 달러에 낙찰되는 등 세계적 작품이 잇따라 경매로 나온 영향이 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폭 위축됐던 미술시장은 이제 2000년대 초반 수준을 되찾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미국이 ‘큰손’ 1위 자리를 지키는 가운데 중국이 영국을 제치고 2위를 차지한 것은 세계 미술시장에서 큰 변화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온라인에서 불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진품 여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되는 고가의 미술품을 두고서도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UBS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으로 사고팔린 미술품의 가치는 54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미술시장의 8.5%다. 10분의 1이 안 되지만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전체 미술시장 규모가 633억 달러로 지난해(637억 달러)와 엇비슷했던 2013년 온라인 거래 비중은 4.9%였다. 온라인 거래 확대는 미술시장의 대중화로 이어진다. UBS는 “최상위 작품이 나오는 경매시장에서 온라인 고객의 40%가량은 신규 고객”이라고 분석했다.
온라인 고객 대부분은 여전히 1만5000달러 이하의 저가 미술품 매입에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미술품 딜러 중 53%는 “온라인 거래가 늘었다”고, 12%는 “인상적으로 늘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온라인에 드러나는 정보가 가격 투명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UBS는 “더욱 많은 갤러리가 전시회 전에 온라인에서 가격이 제시되는 것을 장점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거의 모든 산업으로 뻗어나가는 블록체인 기술은 미술품 경매에도 영향을 미친다. 암호화를 통해 잠재적 해킹으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보호하는 블록체인 기술은 그간 고가 미술품을 괴롭히던 복제·사기 문제를 방지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 스스로가 진품임을 인증하고, 이를 ‘공공 디지털 대장’에 영구적으로 기록하는 개념도 블록체인을 통하면 가능하다.
지난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은 작가 10명 가운데 4명은 한국인이었다. 백남준 이우환 박서보 양혜규가 그들이다. 붓 대신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표현하는 오치균은 중동 지역에서 인기를 끈 작가 10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됐다.
커가는 작가들의 명성처럼 한국 미술시장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3년 494억원 수준이던 한국 미술시장은 지난해 1308억원에 달했다. 연평균 27.6% 성장세다.
한국 미술시장에서도 ‘온라인 바람’이 불고 있다. 2013년 37억원이던 국내 온라인 경매시장이 지난해 약 199억원까지 확대됐다는 것이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분석이다. 그나마 이는 낙찰정보가 없는 서울옥션의 온라인 경매를 빼고 따진 금액이다. 미술품 양도소득세 부과, 대기업 비자금 연루 등으로 침체를 겪던 과거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미술품을 나눠 소유한 뒤 되파는 형태의 ‘온라인 공동구매’도 새로운 투자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미술품 온라인 공동구매 플랫폼인 아트앤가이드가 지난 10월 김환기의 ‘산월’을 공동구매 목록에 올리자 7분 만에 모집금액 4500만원이 채워졌다.
지난달 시장에 나온 이중섭의 ‘무제’는 3분 만에 5200만원을 모았다. 산월의 경우 1개월 뒤 5500만원에 매각됐다. 작품을 쪼개 소유한다는 개념이 비판받기도 했지만, 1개월 수익률이 22%나 된 셈이다. 그간에도 수집가들이 ‘계’를 통해 미술품을 공동 매입한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미술품의 대중화는 반길 일이지만 쉽게 돈을 벌 수단으로 치부되면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경매시장을 분석하는 KB증권 이병화 연구원은 “미술시장도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분석이 필요한 영역인데, 단순히 붐을 타고 ‘단타’를 노릴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그렇게 쉽게 돈을 벌 시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판 커진 미술시장… 블록체인 기술 바탕 ‘온라인 거래’의 힘
입력 2018-12-25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