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불날 가능성 3년 전 알고도… 숨기고 속이고 늦췄다

입력 2018-12-25 04:00
BMW 디젤차량 화재 사고를 조사한 민관합동조사단의 한 관계자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멍이 난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모듈’을 들어 보이고 있다. ‘EGR 냉각기’의 설계 결함으로 구멍이 생기면서 차량 화재로 이어졌다는 게 조사단의 조사 결과다. 최현규 기자
BMW가 디젤차 화재사고와 관련해 숨기고 속이고 늦췄던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에 이미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의 냉각기에 결함이 있어 불이 날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도 은폐했다. 화재를 유발한 원인도 축소했다. 여기에다 독일 본사 차원에서 내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을 논의해놓고도 올해 여름 잇따라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늑장 리콜을 했다.

정부는 ‘냉각기 설계 결함’을 원인으로 파악하고 과징금 부과, 검찰 고발 조치를 했다. 다만 근본적으로 ‘소프트웨어 설정’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밝히지 못했다. 그나마 천공이 발생할 수 있는 흡기다기관을 교체하는 리콜을 요구하고, 추가 조사를 통해 강제 리콜을 명령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뒀다. 하지만 냉각기 균열 발생 시기를 조금 늦추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BMW의 과실을 무겁게 처벌할 ‘징벌적 손해배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민관합동조사단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BMW 차량 화재 원인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BMW를 형사고발하고, 늑장 리콜 과징금으로 112억원을 부과했다. 2016년 6월 30일 이후 출시된 리콜 대상차량 2만2670대 매출액의 1%를 기준으로 산정됐다. 만약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돼 매출액의 3%를 부과했다면 약 3000억원의 과징금을 매길 수 있다.

조사 결과, 사전에 위험성을 알고도 은폐한 정황이 드러났다. 조사단은 “2015년 10월 이미 EGR 냉각기의 균열 문제를 인지하고 독일 BMW 본사에서 TF를 구성해 설계 변경 등 화재위험을 줄이는 작업을 했다. 2016년 11월 흡기다기관 문제 관련 TF를 구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올해 7월에야 EGR과 차량 화재의 연관성을 인지했다는 BMW 측 설명은 거짓이라는 뜻이다. 류도정 공동조사단장은 “BMW 내부 기술분석 자료에서 2017년 7월부터 EGR 냉각기 균열, 흡기다기관 천공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사실도 확인했다. BMW 측이 화재 발생 가능성을 미리 알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늑장 리콜’ 혐의도 공개됐다. BMW는 지난 7월 1차 리콜(10만6317대)을 하며 문제가 된 EGR 모듈을 사용하는 차종 일부를 리콜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사단이 해명을 요구한 뒤인 9월에야 6만5763대를 추가 리콜했다. 올해 상반기에 제출해야 했던 EGR 결함 관련 기술분석 자료를 153일 늦은 9월에 제출해 결함을 숨기려 하기도 했다.

화재 원인도 당초 BMW 측 해명과 달랐다. BMW는 “EGR 냉각기의 누수로 쌓인 침전물이 바이패스 밸브 등의 오작동으로 고온 배기가스와 만나 화재가 났다”고 막연하게만 설명했다. 반면 조사단은 “EGR 냉각기의 열용량(내구도) 부족, EGR 밸브의 과작동 등 ‘설계 결함’ 때문”이라고 명시했다. EGR 밸브가 과도하게 작동하면 많은 양의 고온 배기가스가 냉각기에 잇따라 충격을 주고, 냉각기 내부에서 인화점이 낮은 냉각수가 끓게 된다. 고온의 배기가스와 내부 냉각수 끓음 현상을 버티지 못하고 냉각기에 크랙(틈)이 발생한다. 이 틈으로 알코올 성분의 냉각수가 흘러나와 EGR 내부에 침전물이 쌓이고, 이 침전물이 고온의 배기가스를 만나 불이 붙는 것이다(국민일보 11월 9일자 1면 보도). 류 단장은 “EGR 냉각기 결함을 야기한 근본 원인인 소프트웨어 설정에 문제가 없는지도 조사했다. BMW 측이 리콜 전후로 소프트웨어 설정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은 확인했지만, 이 설정이 처음부터 잘못이었는지 규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추가적으로 65개 차종 17만2080대의 흡기다기관을 교체하는 리콜을 BMW에 요구했다. 앞으로 추가 조사에서 문제점이 드러나면 강제 리콜도 검토할 방침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설정이 냉각기 결함의 근본 원인이라면 리콜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엔진 전문가는 “내구도가 향상된 EGR 냉각기와 흡기다기관으로 교체하더라도 화재가 일어나는 환경 자체는 바뀌지 않아 냉각기 크랙 발생 시기만 늦춰질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냉각기 크랙이 발생해 다시 불이 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