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급 낮은 기형적 임금구조가 ‘시간 싸움(주휴시간 논란)’ 불렀다

입력 2018-12-24 18:47

‘174시간, 209시간, 243시간.’ 최저임금 산정방식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숫자를 기억해야 한다. 174시간은 하루 8시간씩 주당 40시간을 일한 근로자의 월 근로시간이다. 여기에 일주일을 만근한 근로자는 법적으로 주휴수당을 받는다. 쉬는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았어도 8시간 근무한 걸로 간주하고 돈을 주는 것이다. 이 시간을 더하면 월 근로시간은 209시간으로 늘어난다. 여기에다 일부 기업에선 법정 주휴일 외에 노사가 유급휴일을 주당 하루 더 주기로 합의하기도 한다. 이를 약정휴일이라고 한다. 이것까지 감안하면 총 근로시간은 243시간까지 불어난다.

최저임금 산정방식 논란은 월급을 받는 근로자의 시급을 계산할 때 세 가지 근로시간 중 무엇을 쓰는 게 합당한지를 둘러싼 다툼이다. 받는 기본급이 같다면 돈을 주는 사용자 입장에서는 근로시간을 줄일수록 유리하다. 최저임금 시급 계산식에서 분자(기본급)는 그대로인데 분모(근로시간)가 줄면서 시급 환산액이 늘어나게 된다. 반대로 근로시간이 늘면 상대적으로 시급 환산액이 줄게 돼 사용자는 기본급을 더 올려줘 최저임금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재계는 최저임금 계산에 적용할 근로시간을 174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주휴수당을 지급하지만 실제 일하지 않기 때문에 주휴시간은 근로시간이 아니라는 논리다. 대법원도 같은 논리로 주휴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판례를 여러 차례 제시했다.

재계가 ‘174시간’을 주장하는 근본적 배경에는 한국 노동시장의 ‘기형적 임금체계’가 깔려 있다. 기업들은 기본급 인상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고, 상여금이나 수당 등 다른 임금의 비중을 높여 왔다.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있기 전까지 초과근로수당 등은 기본급에 연동해 지급하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싼값에 일을 더 시키기 위해 기본급 인상을 억제한 셈이다. 기본급은 별로 오르지 않는데, ‘김장비’ ‘체력단련비’ 등 온갖 명목으로 받는 수당이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구조가 수십년 이어져 현재 전체 임금 중 기본급 비중은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2013년 6월에 고용노동부가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1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 평균 임금(297만7413원) 중 기본급은 57.3%(170만6690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와 내년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은 ‘인건비 폭탄’을 맞게 됐다. 최저임금은 원칙적으로 기본급을 중심으로 계산한다. 정부가 재계 요구를 받아들여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 등 일부 기본급 외 임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넣기로 했지만 확대범위는 제한적이다. 최저임금 수준을 웃도는 연봉을 받는 근로자에 대해서도 기본급을 올려줘야 할 처지가 되자 결국 재계는 근로시간 계산에서 주휴시간을 빼 달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고용부는 ‘수용불가’ 입장이다. 기본급에 주휴수당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당연히 주휴시간도 근로시간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에 따라 24일 정부가 마련하겠다고 밝힌 최저임금법 시행령 수정안의 마지노선이 ‘209시간’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월 근로시간을 주휴시간이 포함된 209시간으로 보고 최저임금을 결정한 점도 근거 중 하나다. 만약 주휴시간을 빼면 사실상 내년도 최저임금이 인하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재계에서는 일부 기업의 사례를 들며 노사 약정으로 유급휴일(약정휴일)까지 포함해 근로시간이 243시간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에 정부는 약정휴일 자체를 최저임금 계산식에서 완전 배제했다. 약정휴일이 근로시간에서 빠져 재계 요구를 받아들인 것처럼 보지만 약정휴일 수당도 기본급에서 빼기 때문에 결과는 정부의 ‘209시간 안’과 다르지 않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 부담이 가중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