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괜찮습니다. 어려운 분들 만나려고 가는 건데요. 고난은 함께 해야죠.(웃음)”
이정우 경북 안동서부교회 목사는 덜컹거리는 사륜구동차에서도 미소를 지었다. 이 목사가 향하는 울롱궤(Ulonque) 사업장은 모잠비크 중부 테트에서 300여㎞를 달린 뒤에도 비포장도로를 1시간 더 달려야 나오는 곳이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은 이곳에서 13년째 위생과 교육사업 등을 진행하며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모색하고 있다. 이 목사와 국민일보는 지난 11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이곳을 찾았다.
이 목사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비포장도로 옆에 있는 한 농장이었다. 열대 기후인 모잠비크에서는 건기와 우기가 뚜렷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기가 제한적이다. 이 농장은 6700여㎡(2000여평) 밭 한복판에 우물을 만들었지만 농장 곳곳으로 흘려보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월드비전은 지난해 이곳에 물펌프 한 대와 100m 길이의 호스를 지원했다. 작은 지원에도 농장은 크게 달라졌다. 농부들이 더 이상 물을 길러 가지 않아도 되면서 더 효율적으로 작물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농장 구석구석까지 물이 스며들면서 콩 토마토 양배추 등을 최대 3번까지 수확할 수 있게 됐다.
이곳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피터 악손(58)씨는 “물펌프를 설치한 뒤 한 해에 3번 작물을 수확해 시장에 내다 팔게 됐다”며 “지난해 연말에는 작물을 팔고도 남아 놀랐다”고 말했다. 농부들은 우기가 시작되는 1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오래 물을 담아둘 수 있는 보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 목사는 아이들과 물뿌리개로 감자 모종에 함께 물을 줬다. 농장을 빠져나오면서는 월드비전 관계자에게 물펌프 한 대의 가격을 물었다. 그는 “기적은 큰 변화가 아닌 작은 변화로도 삶을 바꾼다”며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모잠비크에는 병원이 흔치 않다. 20㎞ 거리마다 마을 한복판에 있는 헬스센터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의료시설이다. 이곳은 HIV(인간면역바이러스)와 말라리아 검사 등 기본적인 진료와 출산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헬스센터 바로 옆에는 ‘쉘터(Shelter)’로 불리는 작은 집이 있다. 약 2달 동안 임신부들은 함께 식사를 하고 진료를 받으며 출산일을 기다린다. 일종의 산전(前)조리원인 셈이다. 헬스센터 간호사 베르나도 레니소리(38)씨는 “쉘터를 찾는 이들은 정기적으로 헬스센터를 방문하기 어려운 곳에 살거나 저소득층인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이정우 목사가 기도로 이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이 목사가 “출산의 두려움 앞에 있는 당신들과 함께 기도하고 싶다”고 말하자 40여명의 임신부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임신부들의 두려움을 물리쳐 주시고 이들이 낳은 아이들이 모잠비크에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로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임신부도 있었다. 이들은 기도가 끝나자 오른손을 왼쪽 팔꿈치에 부딪히며 ‘지코모(고맙습니다)’를 반복했다. “기도는 약보다 강하다”고 외친 이도 있었다.
울롱궤 사업장에서는 2500여명의 아이들이 월드비전의 후원 혜택을 받고 있다. 개인적 지원 외에 학교 건축이나 교육 등의 혜택도 공유한다. 필요한데도 아직 후원을 못 받는 아이들도 많다.
내년에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랍소니 모제쉬(6)는 책을 읽는 게 즐겁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는 속이 아프다. 교육을 제대로 해줄 만한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랍소니의 아버지 프랭크 모제쉬(52)씨는 “위로 남매를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랍소니까지 가르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며 “어떻게든 아이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월드비전에 후원을 요청했다”고 털어놨다. 이 목사는 랍소니에게 가방과 학용품을 선물했다. 지속적인 후원도 약속했다.
월드비전 해외사업장을 처음 방문했다는 이 목사는 모잠비크의 어려운 현실에 서글픔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변화된 삶에 감사하는 기쁨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면서도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복음의 힘이 필요하다”며 랍소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운전대 잡은 ‘걸크러시’, 분위기 메이커 역할 톡톡
월드비전 로고가 붙어 있는 흰색 사륜구동차 운전석에서 한 여성이 내렸다. 어른들을 만나건, 아이들을 만나건 “세게레라(웃자)” 하면서 먼저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모잠비크 월드비전 울롱궤 지역개발사업장(ADP) 매니저인 메르시 샤레제라(사진)씨다. 지난달 22일 월드비전 울롱궤 ADP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모잠비크 중부의 광산도시 테트 출신인 메르시는 1992년부터 월드비전에서 일했다. 1975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모잠비크는 77년부터 92년까지 치열한 내전을 겪었다. 6·25전쟁의 비극을 알고 있다는 그는 “우리 역시 좌우 간 이념 대립 때문에 이웃을 잃고 가족을 땅에 묻었다”고 회상했다. 그도 내전 때 생이별을 겪었다. 부모님은 마을을 떠날 수 없다며 모잠비크에 남았지만 딸만은 안전한 곳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국경 너머 말라위로 보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국경에서 임산부나 여성들이 살해된 사건을 보도했다. 부모님을 보기 위해 고향에 다니러 간 친구들이 사라지기도 했다.
모잠비크에선 여성이 운전을 하면 반대 차선 남성 운전자들이 한참을 노려보곤 한다. 그럼에도 메르시는 꿋꿋이 운전대를 잡는다.
이정우 안동서부교회 목사는 그에게 걸크러시(여자가 봐도 멋진 여자)라는 별명을 붙였다. “안 좋은 뜻인가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던 메르시도 뜻을 설명하자 이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울롱궤(모잠비크)=글·사진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
[밀알의 기적] 물펌프 한 대의 기적… 메마른 땅이 ‘삼모작 옥토’로 변했다
입력 2018-12-2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