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 나면 참사… 집창촌이 화재 사각지대인 이유

입력 2018-12-23 19:55 수정 2018-12-24 00:22
경찰과 소방대원이 22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 2층짜리 성매매업소 건물 화재 현장에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날 오전 1층에서 시작된 불은 16분 만에 진화됐지만 2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뉴시스

‘소방시설 갖춰지지 않은 노후 건물에 벌집처럼 들어선 합숙소’. 총 22곳에 달하는 전국 성매매 집결지의 현실이다. 성매매 여성의 집단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집창촌의 화재 무방비 문제가 부각됐지만 당국의 후속 조치는 말뿐이었다. 화재로 2명이 사망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업소 건물도 서울시가 지정한 화재경계지구 내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23일 서울 강동경찰서와 소방 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4분쯤 천호동의 한 2층짜리 건물에서 불이 나 16분 만에 진화됐다. 사고 건물 1층은 성매매 업소, 2층은 여성들의 합숙소로 쓰인 것으로 파악됐다. 불은 빠르게 잡혔지만 밤사이 영업을 하고 잠든 여성들이 쉽게 깨어나지 못해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2층 창문마다 창살이 설치돼 있던 점도 구조를 어렵게 했다.

이번 사고로 업주인 박모(50)씨 등 2명이 숨지고 3명이 연기를 들이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다. 사건 발생 당시 2층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빠져나온 여성 박모(27)씨는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소방관의 도움으로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은 소리 지른 사람을 업주인 박씨로 보고 있다.

사고 건물은 1968년에 지어진 노후 건물이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건물 자재 등이 화재에 취약해 시에서 화재경계지구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었다. 천호2지구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조만간 철거될 예정이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경계지구는 소방서 차원에서 관리에 신경 쓴다는 의미일 뿐 소규모 다중시설업소의 소방점검은 건물주가 자체 점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공 교수는 “노후 건물일수록 안전점검 등이 강화돼야 하는데 현재는 새로 지은 건물과 안전점검 규정이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신규 건물들은 지을 때부터 소방시설에 대한 규정이 까다로운데 노후 건물은 적용되지 않아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에 남은 성매매 집결지는 12개 지방경찰청 관할구역 내 22곳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관계자는 “소방점검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들의 숙소 형태로 운영되는 성매매 영업 구조의 문제”라며 “집결지가 존재하면 언제든 이런 사건이 되풀이될 수 있다. 여성들이 집결지를 떠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경찰은 40명의 수사전담팀을 구성하고 정확한 화재원인과 건축법 등 관련법 위반 여부를 수사할 예정이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