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자동차업계는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했다. 완성차업체는 물론 부품업체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런데 주목되는 현상이 하나 있다. 가격이 비싼 ‘큰 차’들이 잘 팔려나갔다는 점이다. 이는 자동차 구매 패턴이 라이프스타일과 소득수준의 변화, 소비 양극화에 크게 영향을 받은 결과로 분석된다.
올해 1∼11월 현대·기아자동차, 한국GM,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 5개사의 판매 실적을 보면 전체 판매량은 소폭 감소했으나 중형차급 이상은 증가했다. 이 같은 경향은 세단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지만 SUV 시장에서 더 두드러졌다.
이 기간 내수 시장에서 주요 모델들의 판매량 순위를 보면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10만대 클럽’을 달성한 현대차의 대형 세단 ‘그랜저’다. 그 뒤를 중형 SUV인 현대차 ‘싼타페’와 대형 SUV인 기아차 ‘카니발’이 이었다. 5위권 내에 유일한 준중형차는 현대차 ‘아반떼’로 7만대를 조금 넘겼다. 5위는 중형 SUV인 기아차 ‘쏘렌토’가 차지했다.
이 기간 준중형 SUV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5% 판매가 감소했다. 하지만 중형 SUV의 경우 20만7269대가 팔려 전년 동기 대비 29.5% 판매가 늘었다. 대형 SUV도 지난해보다 12.9% 많은 4만6734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전체적인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들면서 중형차 미만 차급의 판매량은 감소했다. 하지만 중형급 이상은 줄지 않았다. 이는 수입차 판매가 매년 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도 볼 수 있다. 소득수준이 향상돼 구매력이 높아진 소비자들이 고가의 큰 차를 사는 일은 줄지 않았다는 의미다. 세단의 경우 중형급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 줄었지만 대형 세단의 판매량은 5.7% 늘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쏘나타’를 타던 소비자가 ‘그랜저’를 구매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소형 세단은 판매량이 34.2% 늘었다. 소비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큰 차’가 많이 팔리는 트렌드는 세계적인 SUV의 인기와도 관련이 있다. 가족과 함께하는 레저생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는 소비자들로 하여금 SUV를 비롯해 넉넉한 실내공간을 가진 차를 찾도록 했다. 현대차가 최근 선보인 대형 SUV ‘팰리세이드’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20일까지 누적 예약판매 대수가 2만5000대에 달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잠재돼 있던 대형 SUV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올 자동차업계 실적 부진한데… 비싼 ‘큰 차’ 왜 많이 팔렸나
입력 2018-12-24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