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범죄 등을 규탄해온 여성들의 시위가 잠정 중단된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위가 당분간은 ‘마지막’이다. 지난 5월 19일 서울 지하철 혜화역 인근에서 시작된 여성 시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걸쳐 7개월여간 6차례 열렸다. 이렇다 할 지원 조직이 없었지만 시위 때마다 수만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한국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성단체 ‘불편한 용기’는 22일 ‘6차 불법촬영 규탄시위’를 개최했다. 이날 시위에는 역대 최다인 약 11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기록했지만 참가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사회자는 “우리는 할 일이 없어서 나온 게 아니다”라며 “편파수사와 불법촬영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말했다.
시위에선 일부 참가자의 삭발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이에 참여한 한 여성은 “이 자리의 자매들은 누구도 안 가본 길을 가기 위해 싸우고 있다”며 “이 싸움의 승자는 우리일 것이라 단언한다. 승자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자”라고 외쳤다.
여성 문제 전문가들은 6차례 시위가 ‘역사적인 경험’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상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실장은 “2018년 혜화역 시위는 불법촬영 등 우리 사회가 알면서도 묻어왔던 여성차별 이슈를 공론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라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여성 단일 의제로 6차에 걸쳐 몇만명이 모인 적은 거의 없다”며 “웹하드카르텔이라는 구조적 여성폭력을 여성이 주체적으로 밝히고 문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시위 형태도 신선했다는 평가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 스스로 온라인에서 문제 제기하고 직접 광장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대의제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직접민주주의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윤김교수는 “기존의 상명하달식 시위 문법과 전혀 다른 방식”이라며 “20, 30대 여성들은 기존 운동권과의 모든 연결을 거부하고 스태프와 참여자로서 자유롭게 참여해 민주적인 시위 방식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남녀 성 대결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신 교수는 “남성에 대한 반감과 남성의 집회출입금지를 비판적으로 볼 순 있다”면서도 “여성들이 왜 극도로 남성을 거부하게 됐는지 먼저 질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의 분노가 불편할 수 있지만 그들이 어떤 혐오와 폭력의 희생양이 됐는지 사회가 먼저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시위는 현실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국회는 지난달 본인 스스로 찍은 성적 촬영물을 타인이 동의 없이 유포한 경우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처벌에관한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시위에서 내놓은 숙제 가운데 아직 풀지 못한 게 많다. 신 교수는 “정부가 법과 제도로 처벌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혜화역 여성 시위, 6번의 ‘불편한 목소리’가 남긴 것
입력 2018-12-24 04:00